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6년 10월 02일            기억하며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37 : 1 - 9
인간의 죄가 관용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지 않는 자들을 사용하여 심판하십니다. 물론 그 사용된 믿지 않는 자들도 결국에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심판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가운데 남은 자, 그루터기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죄가 관용하여 심판을 받은 자들 가운데 남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통해 소망 가운데 회개하며 구원의 확신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죄의 심판을 통해 하신 그 때를 기억하면서 죄의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게 되면서 하나님을 경험해 나감으로 자유 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은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온 세계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성찬을 나눕니다. 성찬의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하기 위해 오신 희생제물,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통해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그 사랑을 전하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음에 이르게 한 로마 군병들과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킬 때에 느부갓네살왕의 군대들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름을 모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이 오랜 기간 그곳에 있으면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슬픔 가운데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심판을 간구하는 시편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성전과 왕궁이 불에 타서 초토화되고, 성직자와 고위직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과 약탈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갈보리 언덕의 예수님의 모습도 온갖 조롱과 멸시, 패배자와 같았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모욕과 조롱을 당함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이 될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개하게 됩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절) 이민사회는 어렵고 힘든 시간에 고국을 바라보며, 때로는 가족을 고국에서 살던 기억을 하며 눈물을 지는 기억을 하게 합니다.

시온을 기억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 살던 시절이나 시온의 멸망, 즉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느붓갓네살 왕의 군대에 의하여 불에 타고, 성벽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준비된 모든 것들이 약탈을 당합니다. 고위성직자들은 학살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온에서 자유롭고 평안하게 예배할 수 있었던 시절입니다. 그 예배를 즐기지도, 성실하지도 못했음을 후회합니다.

포로로 끌려와서 오랜 기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도 못합니다. 성전이 초토화될 때에 침략군인 바벨론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주위에 남 왕국 유다를 아는 모든 국가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 있어”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하더니 꼴 좋구먼” 자기 자신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조롱당하심에 눈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기고만장하여 죄를 지으면서도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자기 자신들의 무지에 눈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셔서 재판을 받을 때에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한 후에 있었던 베드로의 통곡과 같을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75)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들의 무능에 눈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죄가 관용한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흔합니다. 교인들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저 모양이야”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 싸우게” 먼저 하나님의 성호가 더럽혀질 때에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나옵니다. 안타까움의 눈물이며, 깨달음의 눈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죄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물이 아닌 분노의 정죄가 나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바벨론과 로마 군대이며, 죄를 지은 유대인이며 자기 자신이 예수님을 죽게 만든 범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눈물이 나옵니다. 교회당이 술집으로 바뀌어 있는 곳을 지나가며 눈물이 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깁니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2절)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수금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구별된 수금입니다. 여호와의 노래, 시온의 노래를 하나님의 성전에서 노래하기 위한 수금입니다. 그러므로 수금은 거룩한 수금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연주하는 수금입니다. 그 수금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없기에 버드나무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수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합니다. 자기들을 위하여 찬송을 부르라합니다. 자기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부르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여 황폐하게 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을 위해 시온의 노래, 여호와의 노래를 연주하라 합니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3절) 만일 이에 따른다면 거룩하지 않게 됩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됩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고 육체의 정욕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4-6절)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거룩하지 못할 때에 순종한 손이 못 쓰게 됩니다.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거룩하지 못할 때에 순종한 혀를 못 쓰게 됨을 말합니다.

만일 그들의 불경한 요구에 응하여 수금을 연주하고 노래한다면 연주한 손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고 노래한 혀는 입천장에 붙어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즉 거룩한 수금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연주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있는 회개하는 자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자기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들의 죄는 거룩하지 못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과 벗하여 거룩하지 않은 이중생활을 하였기에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우상을 섬기는 타락한 삶입니다. 선지자들의 경고를 업신여기고 우습게 여긴 결과,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습니다. 구별되지 않고 함부로 무시하며 살아온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게 됩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약속의 확신, 구원의 확신 그리고 승리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자의 결말을 알게 됩니다. 돌아온 남은 자의 구원을 알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에돔의 심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우고 초토화 시키도록 옆에서 바라면서 방어력을 상실한 예루살렘 거민들을 침략, 노략, 무자비한 학살한 에돔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바로 에돔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을 우습게 여기면서, 핍박하고 조롱한 것은 결국에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핍박하고 조롱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7절) 실제로 에돔은 서기 70년 로마에 의해 민족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시편기자는 바벨론의 심판을 요청합니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8,9절)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자들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며 멸망시키고 포로로 잡아온 결국에는 하나님을 적대한 것이기에 멸망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결국에는 얼마안가 기원전 539년에 바사 즉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죄의 심판을 기억하는 자는 구원의 확신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기에 구원의 확신 속에 거룩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남은 자입니다.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기 위함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악을 더욱 더 깊이 깨달을수록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용서의 은총이 더욱 더 깊이 다가오며 누리기 때문입니다.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