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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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18일            하나님의 소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디모데전서  2 : 1 - 17
주님을 만난 후의 사도 바울은 인생의 여정은 아주 다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후가 다름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누리며 나누며 전하는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고난 운데서도 그 상황과 조건에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조건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어떠하든지,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며 우리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준 삶을 살았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말씀 운데 반을 기록하고, 옥중에서도 갇힌 자로서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를 통해 자유와 기쁨을 전하며 도리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합니다. 그러면서도 영적인 수많은 동역자, 영적인 아들과의 깊은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함께 동역함의 즐거움을 누립니다.

오늘 본문과 같이 후배 회자인 디모데에게 목회의 지침을 주면서 하나님의 사역자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 바울이 영의 아들이며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목양지인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부 분열, 이로 인한 무질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목회적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상황은 밖에서는 권세 자들의 핍박을 당하고 이단과 거짓 교사들이 교회에 유입되어 영적 혼란으로 인한 분열과 무질서가 있는 상황 속에 있는 영의 아들이며 후배 목회자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영적 지도자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해 보아야 함을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십니다. 에베소 교회를 위해 디모데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게 하기 위해 부르십니다. 신앙인들이 이를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사역자들이 사역에 바쁘다가 보면 관심을 다른 곳에 두면 그 부르심의 목적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사역지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 그 어려움에 집중을 하다가 보면 부르심의 목적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시선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정될 때에 갈보리 십자가를 잊어버리기가 쉬웁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부르심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4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며 목적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란 인류 전체가 아닙니다. 전체 인류 가운데서, 나라와 민족과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빈부귀천에, 높은 지위 낮은 지위에 상관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 그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를 대속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는 것이 부르심의 목적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당시에 교인들은 권세자들인 황제와 분봉왕들에 의해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전도와 선교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사람 가운데 권세 자들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원수이며, 핍박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그들을 두려움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려움에 인간적으로 해결하려 할 때에 교회 내부에서 파벌을 만들어갑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파벌은 질서에 순종하지 않도록 만들어 가기에 무질서를 가져오게 만들어갑니다. 핍박자들인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고관대작들은 두려움을 통하여 전도와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기에 기도의 대상에서 제외시킵니다. 눈앞에 보이는 핍박으로 인한 두려운 현실, 정죄를 하면서 미워하게 되면서 그것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 미움은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정죄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들의 힘으로 견디며 해결하려 하기에 그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외면하고 물리치지만 그 핍박의 힘은 마음 깊은 곳에 불안과 초조와 함께 두려움으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들도 사랑의 대상이며 기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맡김으로 무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문제를 맡길 때에 핍박 자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핍박자를 사랑하고 핍박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사역의 대상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두려움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하였기에 찾아옵니다. 핍박 자들을 자기 자신의 뜻과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에 핍박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대상에서 제외시키게 되고,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알기를 원하심을 의미합니다.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구원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영생을 아는 것으로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영생을 누리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직관 즉 느낌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와 느낌 그리고 경험이나 문화로 안다는 것은 이미 진리를 알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이 주관하여 안다는 것은 이미 한계와 상대적인 가치 안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회개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알려주시기를 간구할 때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감동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기쁨은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대속의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에 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의 중심에는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전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구원의 비밀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물품을 나누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방법과 도구에 불과합니다. 전도와 선교는 이웃의 필요를 도와주며 진정한 영적 필요인 복음을 전해주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통하여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하는 지에 있습니다. 많은 선교지에서 세월이 가면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고 도리어 과거의 잘못된 선교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장애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복자들이 식민지의 정복을 위해서 복음을 사용했을 때에 먼 훗날 그 일은 복음의 장애로 나타나게 됩니다. 남미의 정복자들의 선교가 정복을 위해 이용되었을 때에 복음은 미신 화되었고, 결국에는 복음의 중심은 사라지게 됩니다. 단기 선교 혹은 여행 중에 남미에서 발견하는 것이 있습니다. 순수한 카톨릭이 아니라 미신화된 카톨릭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에게 대한 반감도 그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은 쉽게 환경과 조건에 사로 잡혀 그 목적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 멈추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깨달은 진리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성숙을 통하여 열매를 맛보기를 원합니다. 영적 성숙을 원하십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며 이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를 성령 충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움을 받은 사도인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미숙함으로 분열과 무질서 속에 있는 이 문제를 성숙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신앙인들의 각자의 인간적인 뜻이나 세상의 뜻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육되고, 양육하기를 원하십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마음껏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구원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음이 성숙되어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면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보람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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