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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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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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 11일            하나님의 세계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4 : 1 - 17
최근에 두 분의 추모예배, 그리고 미국분의 죽음에 문상을 가면서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의 빠름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유익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삶 속에 나누었던 과거의 사랑의 관계만이 떠오르며 그 사랑이 가슴 속에 심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도와주던 모습들이 떠오르며 사랑과 은혜가 가슴 속에 적셔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사랑의 나눔임을 죽기 전에 혹은 이웃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면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지 않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야외예배는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생각해 보지 못하기에 야외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행 중에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발견하며 감상하며 즐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별들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의 하늘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구름에 의해 가려져 있거나, 지붕에, 건물에 가려있기에 보지 못할 뿐입니다. 인간이 관심이 없어 땅만 쳐다보고 있기에 보지 못할 뿐입니다. 보지 못한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 별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은 무지하고 부패하여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아가지 못하기에 불행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지혜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느냐로 구분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에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제대로 보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신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과연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발견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리스도인이기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착각된 인간의 세계만을 경험하며 그것이 진정한 인생인지 착각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과 인생을 믿고 의지하는 곳에 착각된 세계 즉 세상에 보이는 것만을 보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보이는 것만을 보면서 각자 자기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볼 수가 없는 세계, 즉 영의 세계가 있음을 느끼며 깨닫기 시작합니다. 인생에 대한 질문과 의문이 싹이 트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생의 한계와 상대성을 알게 되면서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름을, 나라, 민족 그리고 문화권마다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존재가 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세계가 있음을 살아가면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한 세계, 영안이 열려야 만이 볼 수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자기 자신과 피조물이 알려준 세계만을 살아가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1절) 영의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지혜 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믿고 경외하는 마음속에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나님을 경외하면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연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 모든 것을 보이는 현상 자체로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삶은 진리를 외면하며 부패하게 됩니다. 진리를 대항하는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영향을 주어 같은 부패, 악 그리고 무지하게 만들어 갑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4절)

2.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2,3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영안을 열어 하나님을 알게 함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랜드 캐년의 웅장함을 보면서는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찾으며 경험하지만 들풀 한 송이 속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들풀하나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하고 세미하심을 경험합니다. 해부학 시간에 인체의 신비에 감탄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오묘하심과 섬세하심을 찬양하는 의학도가 신체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보이는 것의 화려함에만 사로잡히면 보이지 않는 신비함을 보지 못합니다. 보이는 환경과 상황에 눈이 고정 될 때, 즉 인간적인 것에 매일 때에 영원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뉴스에서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도시가 밝아짐으로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기가 힘들어 집니다. 각 나라 위성사진에 밤의 도시의 불의 밝기를 비교하고 그 도시의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을 비교하는 사진이었습니다. 도시의 불 밝기에 비례하여 하늘의 별들은 희미해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밤하늘의 별들은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도시의 인공적인 불빛이 인체에 해로움을 주고 있다는 의견도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들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수록 하나님이 주신 삶에서는 더욱 더 멀어져가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산업을 생각 없이 발달시키며 자기 유익이나 국익을 위하여 나아갈 때에 결국에는 기후의 이상으로 온 세계가 재난에 빠져드는 어리석음을 겪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7)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허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실속이 있는 삶입니다.

3.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삶은 그 결말을 아는 삶입니다. 다윗은 영안을 열어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는 비밀은 시온에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여는 열쇠는 복음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7절) 시온은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시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즉 자기 자신의 멸망과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으로 인한 용서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할 때에 영안이 열립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 초석이 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들어와야 만이 영안이 열립니다. 주 안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실체로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의 살아가는 세상의 실체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들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의 실체의 의미를 깨달아 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와 같이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아버지같이 기다립니다. 이 기다림을 통하여 돌아온 사람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그루터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때가 되어 심판을 받아 멸망받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회개하고 돌아온 남은 자가 있습니다.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이미 끝났다고 포기하지 말고, 회개함으로 용서의 은총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으로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살아가게 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시 9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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