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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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19일            그리스도인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3 : 23 - 29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부르는 호칭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 “기독교인”, “그리스도인” “예수쟁이”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저래” 사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 지게 됩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잘못된 신앙관으로 인하여 복음의 기쁨을 즐기지 못하기에 복음의 본질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사도 바울이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어린 신앙에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를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다시 알려주면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 속에 의미와 보람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 길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는 많은 혼돈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율법과 복음의 혼돈이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인, 이방인 기독교인들이 각각 모두가 과거의 믿던 것들이 복음의 진리를 훼손시킴을 알지 못하며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중심으로 한 율법이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고,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의 문화가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날도 그리스도인들에도 이러한 혼돈이 존재합니다. 행위로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복음을 훼손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행위에 시선을 고정 시키기 시작하면서, 그 시선이 복음을 외면하게 만들어갑니다. 복음은 완전과 완벽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인간은 완전하고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음을 아는 은혜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성숙함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자라는 과정이 필요함을 알려줍니다. 복음은 믿음의 성장을 통하여 그 누림과 나눔이 달라지게 됩니다. 복음이 인내의 사랑인 이유입니다. 복음이 이타적인 사랑인 이유입니다. 복음은 오래 참고 오래 견디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3절)

율법은 율법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율법에 매이게 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감옥에 갇히게 만듭니다. 죄책감에, 무지 무능함에 갇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자기 자신이 알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은 자기 자신의 행위로는 의로울 수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결국은 율법은 자기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고, 율법은 이웃을 정죄하게 만들어 갑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신앙을 비유해 봅니다. 십자가 앞에 만 서있는 신앙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신앙입니다.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음에도 다른 것으로 구원함을 받으려고 노력할 때에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결국에는 십자가는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이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사역은 짐이 되고, 자기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만듭니다. 율법은 구원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24절)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예인선에 불과합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주는 역할입니다. 율법은 그 넓은 바다를 항해하여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를 항해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배에 승선하도록 인도해주는 전마선입니다. 십자가의 통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자기 부인과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의 믿는 것입니다. 복음이 율법의 완성인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믿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확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출발점입니다. 그 믿음이 율법에 매인 우리들을 그 매임에서 자유 함을 줍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자유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6,27절) 구원의 확신은 영생의 확신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자람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 정체와 부패만이 있게 됩니다. 영생의 확신 속에서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자는 성숙되어 갑니다.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며 성숙되어 갑니다. 율법 안에 있는 신앙에서 복음 안에 있는 신앙으로 성숙해 갑니다. 종과 같은 삶에서 아들과 같은 삶으로 성숙해 갑니다. 정죄하며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삶에서 용서하며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초등교사, 몽학선생의 지도 아래에 있는 어린 신앙을 의미합니다. 이는 6-14세 혹은 16세의 귀족 자제들의 가정교사 아래 초등학문을 배우는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는 어린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앙이 성숙되면 자립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직접 만나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교제를 원하십니다. 종의 관계가 아닌 부자의 관계입니다. 관계에 의한 사랑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개인적이며 구체적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7절)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도 그 옷을 통하여 은총 받은 자임을 알게 됩니다. 성도들을 바라보는 눈도 그 옷을 통하여 은총 받은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로 하나가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7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됩니다. 다름이 옷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중심의 믿음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전마선, 예인선을 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그저 이론적으로, 그저 머리로만 알며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도 못합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임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29절) 예수님의 사랑은 약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 있는 유업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생을 살아간다는 약속입니다. 천국의 약속입니다. 구원의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들어갈 때에 그 은혜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간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할 때에 의로워지면서 율법을 지켜나가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더 깊이 누리며 나누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장성한 신앙인,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비밀이기도 합니다. 율법에 매이지 말고 율법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서 완성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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