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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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5일            신앙인의 감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5 : 1 - 8
인생길을 걸어가다가 보면 갑작스러운 질병, 갑자기 당하는 억울한 일들, 파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질병, 갑자기 찾아온 사고와 재난이 개인적으로, 가정에도, 회사, 사업체 그리고 교회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경우들이 있게 됩니다. 그것도 노년에 당하는 것이라면 그 아픔과 고통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편 3,4,5편은 모두가 다윗이 쓴 시편인데 같은 사건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당하는 고난 가운데 쓴 시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은 믿을 수 없음을 다윗은 다시 실감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수많은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사울왕을 피해 도망 다니던 10년의 고난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난을 당해 왔지만 이번의 고난은 다른 것에 비하면 더욱 더 힘든 고난입니다. 아들 압살롬에 의해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미혹에 의해 백성들의 배신함으로 당하는 고난이며 그 동안 충성하고 믿었던 부하들의 배신을 통해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아픔과 고난을 당하는 다윗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성구가 있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존귀하게 여기며 믿음으로 자기 후손 가운데 오실 메시아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고난과 역경가운데 절망과 패망하지 않고 소망가운데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3절) 인간은 어려운 상황이 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어려움은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말이 이를 말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이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가지고 찾아가서 하소연하고, 의논합니다. 억울한 것이 있다면 알아주는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힘들게 한 사람에게 분노를 가진 사람을 찾아가는 이유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잘 이해하여 줄 것 같습니다. 고난가운데 해결 방법에 도움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실제로 힘이 없고 공평하고 정직할 수 없는 죄인임을 모릅니다. 어느 한계에서 밖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모르기에 실망하고 그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 잘못한 해결의 시도 때문임을 알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개인이, 가정이, 사업체가, 그리고 교회도 분쟁과 소송에 휩싸입니다.

이러한 한계와 무지와 무능을 아는 지혜 자가 먼저 가서 무릎을 꿇는 곳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아는 자입니다.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시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시고 헤아려 주실 수 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1절) 그 비밀은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며, 왕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2절) 이른 아침부터 주께 부르짖음은 기다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기도하는 것은 전적인 믿음과 간절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헬리 워드 비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침의 기도는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의 보화 창고 문을 여는 열쇠요, 저녁의 기도는 그의 보화와 안전의 날개 아래로 우리를 가두고 잠그는 자물쇠이다” 다윗의 비밀은 고난과 고통 그리고 염려와 근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람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같이 풀어갔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2.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야 합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7절) 다윗은 자기 자신의 고난을 해결하는 길은 오직 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확신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의 확신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확증된 사랑을 믿는 것 그리고 그 힘에 의지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니 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 자신의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신약시대에는 복음의 능력이라 말합니다. 이 풍성한 사랑의 힘이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음미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사랑의 힘이 자기 자신을 이길 힘을 줍니다. 자기 자신의 분노를 이길 힘을 줍니다. 자기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받은 곳을 치유하는 힘을 줍니다. 자기 자신이 복수하려는 마음을 이길 힘을 줍니다. 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 풍성한 사랑의 힘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후손을 통해 메시아가 올 것임을 언약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그 메시아를 바라보며 주님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심을 확신하는 그 믿음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하며 제대로 하나님의 사인을 보게 합니다.

3. 주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8절) 주의 길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자기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하나님께서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나에게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무거운. 힘든. 분노하는, 억울한, 두려운 마음의 짐을 모두 주께 맡기고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그리고 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라고 하는 사랑을 나누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알고 계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고 행악 자를 미워하십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고 싫어하십니다. 즉 공의의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하실 것이기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어느 사역자가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거짓된 진정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그 누명에 대해 조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조사과정에서 진정자의 거짓과 온갖 협박과 괴롭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오해와 편견을 발견하게 됩니다.

조사하던 사람들이 그 오랜 동안 고통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이 거짓된 진정서에 항변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봅니다.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항변은 다른 진정이 되어 진위를 가리느라고 새로운 싸움이 되고 공동체에 알려지면 분쟁의 씨앗이 되어 혼란이 오고, 이제 믿기 시작한 어린 믿음의 성도들이 실족하여 결국에는 믿음을 잃어버리기에 그들을 생각하며 인내하며 당신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조사 받을 때는 자료로 증명해 주어야 하기에 그 때에 그 자료는 객관성이 인정됨을 알기 때문이라고” 그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린 믿음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강조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억울함과 두려움과 분노와 복수심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비밀입니다.

성전에 받쳐진 희생제물인 고기를 먹는 문제를 사도 바울은 예로 들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우상들에게 드려진 것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음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먹을 수 있습니다.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고전 10:25,26) 그러나 먹지 않습니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 10:27,28) 자기 유익이 아니라 이웃의 유익을 위한 것이 사랑입니다.

제인포터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훌륭한 복수방법은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자를 닮지 않는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 불의로 행하면 같은 불의를 하는 것이 됩니다. 정당방위도 법원에서 부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길로 가면 불행해지고 더욱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됨에도 다른 길로 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자는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의 확신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그리스도의 방법 즉 복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곳에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합니다. 신앙인에게 고난과 역경이 신앙성숙의 기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가운데 있습니까? 영적 성숙의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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