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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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6월 5일            신앙인의 감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1 : 11 - 24
오늘은 믿음의 공동체와 관계되어진 자녀들의 졸업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인생은 과정과 시기가 있습니다. 그 과정과 시기를 거치면서 자라가고 성숙되어 갑니다. 그 과정에는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들이 있게 됩니다. 입학과 졸업이 있게 됩니다. 어느 기독교대학에서 입학식에서 앞으로 신입생들이 대학에서 해야 할 주요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러분들은 취직을 위해 공부하는 데에 목적을 두지 말고 캠퍼스 생활을 즐기면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라” 그러면서 졸업식에서는 인생의 목적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각 분야에서 이웃을 지극 정성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으로 알게 하여 줍니다. 그리고 이웃과 학교, 학우들을 섬기며 봉사한 사람들을 상을 통하여 격려합니다. 졸업 후에 남는 추억가운데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학문적 지식이 아닙니다.

사실 배움은 평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슴에 남은 것은 감동받은 인품 즉 인격을 통해 남아있게 됩니다. 스승의 인격, 동창생들의 인품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한 사람들의 인품입니다. 삶에 양식과 성숙을 이루게 한 것은 만남을 통한 감동입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보이지 않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가슴에 남게 됩니다. 사랑, 겸손, 희생, 배려, 섬김을 통한 영향이 가슴에 남게 됩니다. 신앙인의 진정한 감사는 어떠한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은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주관하시는 분이 있으심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막연하게 운명이 자신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던 삶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필요는 태어나 보니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태양, 공기, 물 등을 스스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혼자 생존할 수 없음에도 이미 부모 혹은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준비되어진 것 안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되어진 것을 모르기에 은혜 밖에 거하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착각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못 알았기에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가두고 죽일 계획으로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을 향하던 중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의지와도 상관이 없이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적 필요를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경험입니다. 그 당시에는 당황하고 놀라웠지만 그 부르심을 가진 후에 사역을 통하여 그 당시를 회상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음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택하여 불러주신 그 은혜입니다.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도리어 진리를 아는 자들을 핍박하던 자기 자신을 불러주신 그 은혜를 사역을 하면 할수록 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의 부족과 한계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의 부르심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3-5) 이러한 부르심의 은혜의 경험은 오래 전에, 아니 영원 전에 택함 받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부르심의 은혜는 택함 받음의 은혜를 누리게 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15절) 절대적 필요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들어옴을 은혜의 누림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1,12절)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복된 소식입니다. 영생의 기쁜 소식을 들어 믿어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사람의 뜻으로 만든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예수님이 드러나게 해주신 복음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복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배운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 도구와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주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사람들은 도구에 불과함을 아는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알고 믿게 된 복음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 믿어지게 된 복음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믿어지며 알게 되는 복음입니다. 사실 복음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복음을 믿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물리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철학적으로 십자가의 비밀, 예수님의 성육신의 비밀을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믿어진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은혜의 누림은 세상의 지식이나 경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2. 쓰임 받는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6절)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다메섹에서 만남을 가졌을 때에 다메섹 사람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을 사역을 통해 더욱 더 음미하게 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이방을 위한 도구입니다. 바울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베냐민 지파, 율법의 대가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선민의식이 강한 사람입니다. 이방인은 외면의 대상이며 무관심의 대상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을 부르심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부름을 경험하게 됩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기에 은혜로 다가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기 자신을 예수 믿게 하는 하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임재를 통하여 사도 바울의 마음에 예수님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바울이 복음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면 알수록, 자기 자신이 자격 없음을 알면 알수록 그 쓰임과 사용됨의 사랑과 은혜는 더욱 더 깊이 다가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쓰심을 통해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깨달아갑니다. 토마스 왓슨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은혜의 사역은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는 데 있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라서 택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택하셔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다” 추악한 죄인인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 쓰임의 기쁨을 누릴 때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존귀한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3. 변화 받는 은혜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열심을 다하는 성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던 율법 안에 갇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열심이었습니다.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해하는 열심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의와 이를 통한 자기 자신의 영광에 열심을 다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서의 변화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웃을 살리기기 위해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이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입니다. 즉 삶의 변화입니다. 맛을 보게 되면 먹고 마시면서 영양분이 섭취되어 영적 건강을 이루어갑니다. 영적 건강은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자기 자신의 변화는 이웃에게 변화를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두려움의 대상에서 바울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웃들이 감동을 받으며 함께 그 은혜와 사랑을 누립니다. 사도바울의 삶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은 용기와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핍박과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주던 사도 바울이 복음의 도구로서 자기 자신들과 동역자가 됩니다. 신앙인의 삶에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자신의 삶이 변하면서 이웃의 삶의 변화를 주는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여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사용되며 복음을 전하는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러한 삶에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이웃을 낫게 여기며 동역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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