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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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22일            부어진 사랑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5 : 1 - 6
같은 은혜와 사랑이 주어지는 데도 그 누리는 것은 각자가 다름을 알게 됩니다. 성도! 교회! ‘에크레시아’ “..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 영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들, 천국 시민권자, 택함 받은 자등 불려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성도라면 누구 나 다 알고 있습니다. ‘이신득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도들은 같은 하나님, 같은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령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다른 하나님, 다른 예수님, 다른 성령님이 아닙니다. 다윗이 믿은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반을 쓴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알게 되는 데 바울이 믿은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다른 분이 아닙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 성 프란시스코도 같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용서와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손양원목사님이 믿은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절)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동일한 은혜와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은 아주 다릅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의 여정 속에서도 아주 다르게 살아옵니다. 그 부어진 사랑을 받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살아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받는 그릇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담기는 것, 누리는 것, 성장해 가는 것이 다릅니다. 그 그릇이 엎어져 있느냐, 바로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담기는 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삶의 그릇이 엎어져있다면 담기지 않습니다. 삶의 그릇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다면 담기지 않습니다. 그릇의 뒤 바닥을 치면서 흘러 다른 데로 가게 됩니다.

태양이 되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으면 자기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살아가기에 담기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삶의 그릇이 하나님을 향하여 놓여있는 것을 믿음의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성장은 다름이 아니라 삶의 그릇을 하나님을 향하여 그릇을 준비함으로 담아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어진 사랑을 담아가는 삶에 나타나는 열매는 어떤 것으로 나타나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평안을 누리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1절) 인간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수관계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보려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지음으로 엎어진 관계, 등을 돌린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바라보시지만 인간은 등을 돌리고 외면하며 인생의 삶의 그릇을 엎어놓고 있었던 관계가 되었습니다. 바라보지 않고, 향하지 않기에 무지와 무능 속에 어둠 속을 헤매는 어둠의 자식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진노의 자녀가 됩니다. 자신의 합리화와 우상화를 통해 영의 생각이 아닌 육의 생각에 사로잡혀 그 곳에 살길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삶, 어리석은 삶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인간은 자기 생각, 세상의 생각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과 세상이 말하는 것이 우선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에게 등을 지고 하나님을 원수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억울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면 손해가 엄청나게 날 것 같고, 망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비천해질 것 같고 죽을 것 같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살아가는 삶에는 불평, 불만이 가득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무지와 오해와 오판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에는 잘못이었음을, 헛됨을, 어리석었음을 깨달으며 후회하게 됩니다. 삶의 그릇을 엎어 놓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데도 담고 적시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호수가 막힘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힘으로 만나지를 못합니다. 이 막힌 담을 뚫려야 생명수가 삶을 적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불통으로 답답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를 뚫고 녹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믿음으로 의로워졌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화평은 ‘에이레네’하는 원어로 빚진 상태를 청산하고 상호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감으로 누리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고, 불순종함으로 치러야 하는 죽음의 대가를 예수님이 대신 치르셨습니다. 바로 이 사랑의 확신,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화평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확신을 가져옵니다. 영의 생각을 좇아 살아가게 합니다. 엎어진 그릇이 하나님을 향함으로 부어지는 사랑을 담으며, 적시며 성장해갑니다. 막힌 담이 녹아져 하나님이 보내시는 영생수가 공급됩니다. 하나님의 뜻, 비밀, 사랑을 더욱 더 알아가면서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져 감으로 더욱 더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변하여 평안과 자족하는 삶입니다. 사랑을 받고, 누리고, 적시고 있기에 사랑의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있게 됩니다.

2. 즐거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절)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통한, 용서의 은총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던 그 존재로 돌아갑니다. 이 말씀은 이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함께할 수 없었던 인생이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그 삶을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이 소망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은 환란가운데서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와 같은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은 생기를 불어 넣어 살아나게 하실 분임을 알기에 즐거워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3,4절) 환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자는 인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의 확신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인내를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가면서 연단되어갑니다. 마침내 믿음의 소망이 열매로 나타남을 경험하면서 더욱 더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즐거움으로 풍성해집니다. 잃어버린 낙원 에덴동산을 다시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며, 변하지 않는 분임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확신 속에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3.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절) 부어진 사랑을 풍성히 받을 수 있는 비밀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이 연약할 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이 경건하지 않을 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이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이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이 강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친했을 때에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이 은혜이며, 선물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순수한 은혜와 사랑을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를 누리는 비결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원수를 위하여, 죄인을 위하여, 더러운 인생을 위하여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을까!” 용서의 은총을 통한 은혜가 가득 담기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더깊은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담아 행복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인생의 삶의 그릇을 바로 놓은 삶은 한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담기에 삶에 감사와 만족 그리고 여유를 가짐으로 평안과 기쁨과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오늘 성찬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삶 속에 부어졌고 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의 그릇이 엎어져 있지 아니한지 살펴보십시오. 주안에 있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 안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부어지는 은혜와 사랑은 같으나 그릇이 놓인 것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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