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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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8일            관계의 사랑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7 : 20 - 26
어머니 주일입니다. 어머니! 사망진단서에 보면 꼭 확인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망자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를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바로 그 사람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수고가 없었다면 그 사람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의 해산의 수고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 앞에 버려진 어린 아기를 잘 키워 훌륭한 인물로 만드신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가 사회를 위해 큰 사역을 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나는 사역을 함으로 그의 삶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생명을 건진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이 은인입니다. 그리고 길러주신 권사님도 은인이지만 낳아주신 그 부모도 은인입니다.

버려진 아기가 권사님을 잘 만났지만 버린 부모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관계, 꼭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관계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일 것입니다. 어머니 은혜를 기리면서 어머니 주일을 지냅니다. 효하면 동양사상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도 효(孝)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오늘 본문 전 16장까지 고난을 앞두신 예수님의 고별설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17장은 고난을 통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먼저 성부와 자기 자신을 위한 고난을 통한 영광의 회복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인내로 믿음을 가지면서 연합하게 하고 복음으로 거룩해지도록 간구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전할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관계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질 살펴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이러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랑을 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21절)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23절)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는 사랑은 자기중심의 사랑입니다. 관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 자기 자신의 생각, 자기 자신의 뜻 안에서 나누는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서로 안에서 하는 사랑입니다. “안에” 라는 말은 서로를 배려하며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리 사랑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항상 생각하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 괜찮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하는 사랑은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고 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며 하는 사랑입니다. 자녀의 진실한 부모사랑은 부모가 누구신지 알고 하는 사랑입니다, 부모의 진실한 자녀사랑은 자녀가 누구인지 알고 하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랑은 자기중심의 사랑으로 관계의 사랑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와 갈등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자기중심의 사랑은 비교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비교, 이웃의 자녀들과의 비교하는 사랑을 하기에 질투와 절망으로 그 사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필수적으로 절대적으로 필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아니하면 피조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알 때에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는 사랑에 영생의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하는 사랑에 영생의 기쁨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자기 스스로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심령의 깊은 곳까지 알고 계십니다. 과거와 현재만이 아니라 먼 미래 그리고 영원까지 알고 계십니다. 태어나는 것, 살아가는 것, 죽는 것 모두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해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랑의 나눔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랑을 나누는 것이 관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인간관계에서 사랑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시면서 조건을 달아 놓지 않으신 이유입니다.

부모님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부모님이 건강하든, 연약하든 부모님이 공부를 많이 하셨든, 공부를 못하셨든 부모님이 존경을 받던, 조롱을 당하시든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모님이기 때문에 사랑해야 하고,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부모님이 은퇴하신 후에 연약해지면 무시하고 견딜 수 없어하는 자녀들은 부모님을 좋아했던 이유는 부모님 자체가 아니라 부모님의 후광이었을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2. 다양하지만 연합하여 일치된 사랑을 합니다.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21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2절)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23절) 성도들은 모두가 받은 은사가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문화와 인종도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성도가 하나가 됨은 성도들이 온전함을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온전함은 완전함이 아니라 성숙함입니다. 성숙함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보완하며 협력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가 되는 비밀을 알 때에 다름이 서로 보완을 하게 됩니다. 다른 은사가, 다른 성격이, 다른 생각이 서로를 보완하는 요소가 되어 하나의 온전함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함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나누면서 전하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와 죄인임을 깨달으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지체이며, 함께하는 성도들도 예수님의 지체로서 한 몸임을 깨달을 때에 세상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성도들을 사랑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3.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와 같이 임을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21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22절) “같이”라는 의미는 본받음을 의미합니다. 관계의 사랑은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이 말씀 중심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의 사랑,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주안에, 그리스도를 본받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의미가 이 사랑을 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랑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눔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을 나눌 때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 보내신 자가 누구신지를 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피조물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 때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에 조건과 배경의 사랑이 아니라 관계의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받은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할 때에 그 은혜와 사랑의 빚을 삶으로 갚아나갈 때에 그 관계로 인하여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인내의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본인이 나누는 사랑을 살펴보십시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그 나누는 사랑을 살펴보십시오. 상대방 안에 들어가 이해하는 사랑인지, 다양성을 받아서 함께 누리는 사랑인지를 살펴보십시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내 자신이 음미할 때에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며, 그 사랑에 복음의 기쁨을 경험하며, 그 사랑에 세상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머니께 진정으로 효도하는 삶입니다. 조건과 배경을 통한 사랑을 나누지 마시고 관계의 사랑을 나누십시오. 나를 낳아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은혜를 아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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