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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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 17일            횐 옷을 입은 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요한계시록  7 : 9 - 17
존재가치! 미국의 가치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기독교 문화로 형성된 나라로서 신앙인들이 세운 나라이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헌법에 명시하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모두가 함께 자유를 누려야 하고, 평등하게 누려야 하기에 자유와 평등을 최상의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인권을 보장하려 노력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존엄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한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존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존엄을 자기 스스로 인정받으려 합니다. 세상으로 인하여, 이웃의 인정으로 인하여 그 존엄한 가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갈등과 다툼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흔한 말이 “나를 무시해” “우리를 무시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흰 옷을 입은 자로서 그리스도인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입니다. 계시는 감추어진 것이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묵시는 그 중에서도 종말에 관해 감추어진 것이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이 유배된 밧모섬에서 환란 가운데 있는 초대교인들에게 미래에 이루어질 일을 계시 받은 것을 통하여 알려 줍니다. 이는 환란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소망을 가짐으로 승리하기를 소망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을 미래에 관한 예언의 성경이 아니라 미래를 통한 현실에 관한 성경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세의 대환란과 그 가운데 구원받은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죄로 인한 멸망과 동시에 남은 자, 그루터기의 구원을 말씀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세 개의 중요한 형태로 표현되는 일곱 번의 재앙으로 상징되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곱 인(印) 재앙, 일곱 나팔재앙, 일곱 대접재앙을 통해 종말의 환란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일곱인 재앙은 일곱 개의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인봉된 두루마리가 어린 양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개봉됨으로 7개의 재앙이 시작되고, 7번째인 재앙에 일곱 나팔 재앙이 알려지게 됩니다. 7번째 나팔 재앙에서 일곱 대접 재앙이 알려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번째 인봉된 것이 개봉되기 전에 흰 옷을 입은 자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환란 가운데 구원과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자임을 알려줍니다. 흰 옷을 입은 자는 어떠한 사람들인 지, 즉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존귀한 존재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사람들임으로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흰 옷 하면 생각나는 것은 예전에 우리 민족입니다. 한 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색의 옷을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흰 옷 하면 생각나는 유니폼은 나이팅게일 백의천사(白衣天使), 간호사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흰 옷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만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신랑이 되신 예수님에게 신부된 우리들이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흰 옷은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옷이 아닙니다. 흰 옷은 어린 양의 피에 자기가 입던 옷을 씻어 희게 되어 진 옷임을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젛)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며, 동행하며 즐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다른 곳에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여진 옷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어린 양의 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즉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바로 대속의 사랑인 용서의 은총을 받은 자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피로 씻어 희게 한다는 것은 주안에서만이. 주 만 바라보아야만이 예수님의 희생의 사랑만이 예수님의 비밀을 알고, 그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에 자기 자신의 옷을 씻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양의 피는 자기 스스로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양의 피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즉 구원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대속의 사랑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죄를 대속의 사랑으로 씻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진리이신 주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진 사람입니다. 용서의 은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삶이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흰 옷을 입은 자입니다. 흰 옷의 ‘흰’이라는 원어의 뜻은 광채가 나고 찬란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과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말합니다. 성결과 승리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2. 생명력 있게 살아가면서 존귀함을 누립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16,17절) 예수님을 목자 즉 인도자로 삼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인도하시는 생명수 샘에 나아갑니다.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에는 그 은혜와 사랑으로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가운데 생명력을 가집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소망이 생깁니다. 자신을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그 사랑을 믿고 나아갈 때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인내할 수 있는 힘이 흰 옷을 입음으로 생깁니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이 흰 옷을 입음으로 생깁니다. 겸손할 수 있는 힘이 흰 옷을 입음으로 생깁니다. 환란가운데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쁨을 누립니다. 환란가운데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의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 본문 9절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선 이유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9절)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가지를 든 이유입니다. 죽은 것 같으나 이미 영생의 기쁨을 누립니다. 바보와 같아 보이나 이미 지혜의 기쁨을 누립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것 같으나 이미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버린바 된 것 같으나 이미 다 이루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사랑이 우리들에게 이길 힘을 줌으로 승리를 확신하며 누립니다.

3.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감사함을 누립니다.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10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감사의 찬양이 외쳐집니다. 어린 양의 피로 빨아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경험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 경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만이 누립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연스러운 순종을 가져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은 감사한 마음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은혜의 빚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감사를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더욱 더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귀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 그 고마운 마음은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데 그 귀한 선물을 받았을 때에 그 고마운 마음은 자연스럽게 표현되게 됩니다. “제가 해드린 게 뭐가 있다고” 자기 자신이 성결한 흰 옷, 광채가 나고 찬란한 생명의 옷 즉 의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흰 옷을 입은 감격입니다. 바로 그 은혜와 사랑을 받은 감사가 찬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찬양은 노래가 아니라 삶 자체라는 말이 이것을 뜻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다고 큰 소리로 외침은 은혜 받은 자가 누릴 수 있는 희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하며 누리는 축복입니다. 감사의 찬양입니다. 흰 옷을 입어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의 존귀와 존엄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구원받은 자로서 주 안에서 생명력을 공급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복이 있는 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찬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흰 옷을 입은 여러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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