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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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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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 3일            생명을 얻기 위해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요한복음  20 : 19 - 31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인이 됨은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정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살아가며 삶의 현장에서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삶 속에서 생명력을 누리며 이웃에게 생명력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생명력을 가집니다. 믿는 데가 있기 때문, 그것도 전지전능하신 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확증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의 확신이 부활의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신앙인의 생명력은 특히 고난과 역경 속에서 잘 나타납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소망을 가지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여줌으로 이웃에게 소망을 가져다주는 삶입니다.

믿음의 본을 보여준 모든 신앙인들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구약의 예로 다윗을 들어봅니다. 장인 사울, 아들 압살롬 그리고 믿었던 신하들과 백성들의 배신 가운데 시편을 많이 올리는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신약의 예로 바울을 들어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매 맞고, 잡히고,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갇히고, 배신을 당하며 사도성을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통해 복음을 전합니다. 공통점은 고난과 역경을 하나님을 알리는 기회로 삼으며 담대하게 나아가며 고난 속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리아와 여인들이 목격하였지만 제자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함은 십자가의 죽음에 머물게 만듭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19절) 안식 후 첫날 저녁: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저녁입니다. 오늘날 주일이라 불리는 날 저녁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제 자기 자신도 예수님의 무리로 처형을 당할지 모를 두려움에 모여서 문을 굳게 닫습니다. 그 닫은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요한복음 마지막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1절) 본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기록한 이유도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 길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 근본적인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인간에게 숨어있는 근본적 문제는 죽음의 공포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입니다. 죽은 후를 알지 못하고, 죽음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겨보려고 불로초를 구하려 했던 진시황의 어리석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오면 그로 인해 죽을까하는 공포 속에 절망합니다. 중한 병에 걸리면 그로 인해 죽을까? 사업이 잘 안되거나 직장을 잃으면 그로 인해 죽을 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입니다. 즉 절망감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평강은 찾아오지 아니합니다. 평강이 임하지 않으면 기쁨도 찾아오지 아니합니다.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죽음의 문제입니다. 만일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면 이미 고난과 역경이 아니며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노력하여 해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시는 말씀은 문제가 해결 되었으니 평강을 누리라는 선언입니다.

2.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인간이 평강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자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알 수 있다고 하는데서 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고난과 역경이 축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는 삶은 착각 속에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월을 허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는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은 바로 자기 자신이 착각한 인생을 깨닫게 해줍니다. 자기 자신이 주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관하고, 자기 자신이 소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움켜쥐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판하는 삶이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삶이 죄임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며, 하나님을 대항하며 그리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회개의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21, 22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임재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한 성령의 임재입니다. 예수님의 숨을 받아 깨닫게 되는 성령의 임재입니다. 그 성령의 임재는 영안을 열어주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보고 알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듣고 알게 하여 주십니다. 성령이 찾아오셔서 우리들의 믿음을 요청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요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계획입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만인에게 알리는 즉 신랑이 되신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리고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남편 되신 예수님과의 사랑을 되새기며 기념하는 결혼기념일이 성만찬입니다. 그 믿음의 힘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림으로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구원 즉 영생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때에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3. 용서의 확신을 통한 사랑의 빚진 자로서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연결된 근원입니다. 뿌리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파이프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 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본은 알아보는 것, 이해하는 것,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근본은 믿음으로 접속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에 본능적으로 구원을 위한 그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의 사랑 즉 자비와 긍휼, 용서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확신만이 두려움을 사라지며 생명력을 가져다줍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즉 구원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깁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비밀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29절)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믿음과 관련시키시는 이유입니다. 믿음의 장애는 겸손이 아닌 자기 비하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렇게 죄를 지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죄를 지으심으로 용서받은 사랑의 대상임을 알지 못할 때에 자기 비하나 죄책감에 빠져 절망하게 됩니다.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가, 자격이 없음을 아는 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음을 알았을 때에 대속의 은혜를 담게 됩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믿음의 결과인 고결한 두려움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의심과 불신의 산물인 사악한 두려움이다. 전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소망으로 인도해주고 후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므로 절망으로 인도한다” 생명력을 가지게 되면 죽음의 두려움에서 은혜의 빚진 자로서 그 은혜를 갚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인 고결한 두려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을 경외심이라고 말합니다.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통해 거리로 뛰쳐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는 생명력을 가진 이유입니다. 죽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에 승리하여 믿음으로 대속의 사랑을 확신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순종하는 삶에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죽지 않으려고 문을 닫고 있었던 제자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는 곳에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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