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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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3월 6일            하나님의 보호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여호수아  5 : 9 - 12
태초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동일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나타내시고 섭리하시는 모양은 시대별로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입니다. 바울과 함께하신 하나님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동일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제자와 사도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은 믿음의 선배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과거에 함께하신 주님은 오늘도 함께하시고 미래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기원전 1405년 정월 10월경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광야 길을 걸어오면서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하기 전 할례의식과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여호수아를 격려하며 거룩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에 나섭니다. 유월절 이틀 날에 가나안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은 다음 날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가 그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의 그침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데 어떻게 하시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보호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9,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 정복을 하기 전에 작전 본부를 길갈에 설치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처음으로 진을 친 곳입니다. 길갈은 수레바퀴라는 뜻으로 ‘구르다’, ‘옮기다’라는 ‘갈랄’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캘빈은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치를 옮겼다고 해서 애굽이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이 당한 수치를 해소라고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기 전에 할례와 유월절 행사를 가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할례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임을 표시하는 즉 약속의 자녀임에 대한 의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 난지 팔일이 된 남자아이들을 할례를 통하여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유월절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죽음을 유월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시, 시내광야에서 그리고 가나안 정복 전인 오늘 본문에서 절기를 지킵니다. 가나안 정복을 하기 전에 이러한 의식과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되새기는 의식입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분명히 알고 그 은혜와 사랑 안에 있어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더라도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 은혜와 사랑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누리며 나누게 됩니다.

오늘날 세례와 성만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해야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헛됩니다. 이것은 마치 아무리 더하고 더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영만을 수없이 더해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신앙인의 헛수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분명히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해 주셔도 그것이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을 하나님이 해주심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제대로만 알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의 실체를 알면, 착각에서 벗어나면, 무지 무능한 인간의 생각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가면 호흡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시 150:6)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자기 자신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사랑의 확신입니다. 이 사랑의 확신만이 담대하게 만들고, 자유하게 만들며, 믿음을 가지고 소망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이 관계의 확신이 자기 자신에게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을 진실 되게 경험해가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쉬지 말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과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향하신 뜻을 알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에 오게 하신 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약속과 구원을 되새기며 할례와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욕심이 아닌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12절) 광야 길을 오면서 내려주시던 만나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해주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굶주림에 대한 원망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 도다“(출 16:2,3) 광야 길을 가면서 먹을 것이 필요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광야 길을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면 언제나 모세와 아론을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받으며, 수많은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마치 매일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었던 것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만일 이것이 원망이 아닌 간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배가 고픕니다. 음식이 필요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이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옵소서!” 아마도 만나가 내릴 때에 간구에 대한 응답의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출애굽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심을 확신할 때에 소망 가운데 기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야”만나를 내려주실 때에 그 믿음에 대한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구를 한 후에 만나를 받았을 때에 응답의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연약하였기에 원망을 하게 됩니다. 원망은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은 이 원망의 소리도 들어주십니다. 그 원망은 필요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망에 대한 들어주심은 원망한 자에게는 큰 은혜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고 간구하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는 응답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원하십니다. 만나를 주신 이유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나를 인간이 만든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려진 음식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3. 하나님은 수고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인생이 창조되어 제일 처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복입니다. 그런 후에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십니다. 즉 번성하며 관리하라는 명령입니다.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생산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 교제를 통하여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교제는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일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을 주신 것이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으신 것입니다. 수고의 기쁨을, 관리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복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살후 3:10-12)

노동의 신성함, 노력의 맛 그리고 수고한 자가 누리는 보람을 누려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도 일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리하면서 즐기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자기 자신의 수고로 누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 노력과 수고를 하는 이유는 그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삶 속에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루프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력이 없이 얻은 재산은 지속되기 어렵지만 은혜에 대한 감사는 영원하다” 하나님의 보호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과 순종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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