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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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28일            신앙인의 시험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0 : 1 - 13
성숙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신앙의 연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성장 즉 자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더 풍성하게 누리며 나누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평안과 기쁨이 더욱 더 넘치며,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해져 가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관계에서 점검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욱 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순종하여 하나님을 경험해 가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사랑과 은혜의 경험은 복음의 능력을 더욱 더 경험해 갑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이 허물과 죄를 더욱 더 알아가면서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인 용서의 은총을 더욱 더 실감해 나가는 지를 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 즉 옛사람의 허무함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한 자기 자신의 엄청난 존재가치 즉 새사람의 존귀함을 실감하게 되어 갑니다. 대인 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진리를 깊이 알아가고, 겸손하여 이웃을 자신보다 더 나음을 인정하며 이웃을 통해 자기 자신과 다름을 배우며 나아가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여 시험을 이기게 됨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로 다양한 은사와 영적 지식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경험해야 함에도 잘못 알아 교만해 지고 자기 자신이 앞서 갈 때에 그 은사와 영적 지식은 파벌과 분쟁 그리고 자유를 절제하지 못하는 방종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은 이 시험을 이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편지를 보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신앙인이 성숙의 과정을 통하여 경험해가야 하는 시험에 어떤 시험을 그리스도의 사랑 즉 복음으로 이겨 나가야 하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지혜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1절)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할 때에 엉뚱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월을 허비하게 되고,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인은 먼저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혜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어버림은 자기 자신들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은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된 은혜를 잊은 것입니다. 이에 대한 광야길에 표징이 따라 다니고 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이 해를 가려주며 인도함으로 광야 길을 가고, 밤에는 불기둥이 차가움을 없애주며 광야에서 숙박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홍해는 인간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그 강을 모세의 순종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너감을 의미합니다. 홍해를 건너가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에도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며 누리지 못하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한 선조들의 예를 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조상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멸망과 깨우침의 본보기로 듭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5,6절)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11절)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고 나누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자기중심의 교만으로 정죄하며 파당을 지어가는 악을 범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7절)

잘못된 신앙생활은 우상숭배를 하기가 쉽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가서 늦게 내려오자 산 아래에서는 모세를 대신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믿음의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믿음의 대상임에도 상대적 대상으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섬깁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을 믿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방법,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우선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고,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외면하며 인간의 중지를 모아 교세 성장만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교세를 통해 자기만족에 빠지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음행하지 말라”(8절) 잘못된 신앙생활은 선을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음행은 성적 타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적 행위를 악하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인간에게 지시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성적 행위가 악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은 배우자 안에서입니다. 그 선을 넘어가면 음행이 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음행한 결과로 염병으로 2만 3천명이 죽게 되는 것은 선을 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하지 말라”(9절) 잘못된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시험하기 쉽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징계하실 지를 은근히 시험합니다. 자기 자신들이 죄를 지어도 주님이 용서해 주시기에 괜찮다는 자유를 절제하지 않는 방종합니다. 계산에 넣어하는 행동, 심령의 깊은 곳 까지 보시는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기에 용서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진실한 회개만이 용서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2. 겸손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12절) 선줄로 생각한다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특권의식에만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직분을 맡을 때도, 자기 자신이 무슨 자격이 되어 맡았다고 할 때 이미 덫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체험을 하고 그 체험에 매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훈련과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교와 전도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역과 직분을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배우자에 대해 간절히 기도해 오던 어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이웃을 위해 섬기고 선교를 같이 할 수 있는 동역자와 같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지내옵니다. 그 응답이라 생각되는 이성을 만나면서 확신이 오자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상대방보다 급하게 다가가자, 그 상대방은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보다 못해서, 자기 자신보다 부족해서 자기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기에 급하게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신앙인에게는 세상의 조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자기 자신이 가진 것, 갖춘 것들은 다만 도구에 불과하기에 그것이 중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중심을 보며 다가온 것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을 그만두자 성경교사로, 헤비타이트 휴머니티의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 마련을 위해 망치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임무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3. 믿음에 대한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의 길을 갈 때에 수없이 했던 것이 원망이었습니다. 원망의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모세에 대한 원망은 모세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었습니다. 그 불신은 자기 자신들의 생각과 때에 맞지 않을 때에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자신들의 생각이나 때가 우선될 때에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주님임을 믿는 다면 원망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은 스스로 감당하여 이겨내기를 원하십니다. 한계 된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순종을 통해서 성장해 나가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절)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신다는 의미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여 주심을 의미합니다. 순종은 주안에서 하는 이유입니다.

복음 안에서 순종할 때에 그 순종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복음 안 즉 사랑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 맡길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함은 그 주신 것을 잘못 알아 신앙 교만으로 인하여 자기도취에 빠짐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주신 은사와 능력을 자기화시킴으로 믿음의 대상이 잘못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시험은 믿음의 성장에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전하는 데에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 즉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자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알아 하나님께 맡길 때에 소망 가운데 인내하면서 시험을 이겨 나갈 때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더욱 더 알아가며 더욱 더 겸손해지며 예수님의 사랑이 삶 속에 깊이 적셔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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