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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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21일            진정한 의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창세기; 15 : 1 - 18
우리들이 본받고 싶은 위대한 위인들이 기독교 역사상 인물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도,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도 본받고 싶은 신앙인들이 많이 있으며, 이를 글을 써 알려주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중에 한분 헨리 나우엔입니다. 네델란드에서 태어나서 예수회 사제로 있다가 미국에 예일 대학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존경받는 교수이자 학자이며 사제였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인 1981년,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로서 거룩한 부담감을 품고 페루의 빈민가로 떠나 한동안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합니다. 그는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와 3년간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에서 강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하게 됨을 깨닫고 1986년, 그가 1996년 9월에 심장마비로 소천하기까지 10년 동안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몸소 보여 주면서 많은 저서를 남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도 그 자체가 의인이 아니라고 말하며 다만 의롭다 칭함을 받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이를 너무나 잘 아는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곤고함을 이렇게 호소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라우엔도 이것을 알았기에 자기 자신이 은혜의 빚진 자임을 잊지 않고 은혜를 누리면서 그 은혜를 누리려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 즉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롯을 비롯한 사해 연안 국가들의 포로를 구출한 후에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요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심을 듣고 이에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하는 질문으로 오늘 본문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은 진정한 의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의는 바른 것, 옳은 것, 올바른 도리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의 가운데 살아가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데, 그러면 진정한 의 즉 진정으로 올바른 길이 어디에 있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체만이 올바른 의 즉 진정한 의가 됩니다. 올바른 도리 즉 의는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의만이 올바른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상이 말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자기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올바른 도리는 세대와 문화와 사람과 인종에 의해 다르게 됩니다. 세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인종에 따라, 배경에 따라, 환경에 따라,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셀 수 없는 수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브람과 사라의 사이에 자식이 없으며 인간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인간의 상식 안에서는 절대자이시며,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어버린 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아브라함은 오늘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씀을 듣자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2,3절)

아브람도 인간이기에 자기 자신의 생각, 세상이 들려 준 가치관에 유혹을 당합니다. 주의하지 아니하면, 깨어있지 아니하면 사람인 이상 그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씨를 주시지 아니한 관계로 자기 생각에 사라는 자기 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통한 후사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의는 인간 중심, 자기중심의 올바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 하나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길은 다른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한 후사 즉 이삭의 탄생의 예고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진정한 의를 찾아야 합니다. 즉 의인의 길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사탄의 유혹에 세상의 생각, 자기 자신의 생각 즉 인간의 관심에 의해 하나님의 길을 외면하게 됩니다. 오늘 아브람의 생각도 이 유혹 안에 들어갈 때에 자기중심의 해석을 통하여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4,5절)

2.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어떤 대상에게 자신을 맡기고 끝까지 의지하는 마음으로 그 믿음의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려는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길, 즉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이 배운 학문으로, 자기 자신이 경험한 경력으로, 혹은 자기 자신이 습관화된 문화로 생각하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기호에 맞는, 자기 자신에게 평안하고 자기 지신이 인정하는 하나님을 만나려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 자신에게 맞지 않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믿음에 먼저 회개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에 대한 고백과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고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게 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6절) 여호와를 믿으니 라는 믿음에 관계된 단어 아만은 계속해서 꾸준히 ‘세우다’ ‘신뢰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를 알기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집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믿음은 오늘의 이성과 경험과 문화와 배경 등 모든 인간적인 한계를 초월합니다. 믿음은 한계와 죽음을 초월하고, 한계 되어 진 세상과 구별되게 하는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자만이 그 말씀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푸러시아 나라에 후레드릭대왕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조롱할 때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본진래도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폐하를 위해서 38번이나 목숨을 다하여 충성하며 전쟁터에 나아가 승리를 해 왔음.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나의 주님을 모욕하는 폐하를 떠남, 이제 종은 영원한 나라에 갈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임. 나의 영원한 왕은 한 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장군은 자기 자신이 가야할 올바른 길 즉 진정한 의를 아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러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의를 경험을 해가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자기 자신의 한계와 거룩함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서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에 대하여 아브람은 질문을 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절) 알고하는 마음은 질문으로 나타납니다. 마리아도 천사에게 질문을 함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기드온도 하나님의 사자에게 질문을 함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삿 6:17) 이에 기드온이 고기와 무교병 가져옵나다. 그리고 경험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삿 6:21)

오늘 아브람에 대한 질문에 고대 계약 양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희생 제물과 하나님의 사인을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뜻을 알려는 간구를 통하여 약속의 응답으로 그 뜻을 확신하게 함으로 그 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말씀을 제대로 살아 갈 수 있는 비밀을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고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올바른 인생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하나님의 사인을 구하고 보며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 약속의 성취, 그 약속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진정한 의를 좇는다는 것은 이론이 아니고 구체적인 희생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십자가라는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기에 은혜입니다. 진정한 의는 자기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알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신 뜻을 알고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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