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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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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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7일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99 : 1 - 9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깨닫거나, 깨달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되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는 잘못 알고, 잘못 살아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이 역사는 주관하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주관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 왔음을, 이것이 착각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이 신앙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곳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 알기를 간구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알아가는 삶입니다.

오늘 시편 99편은 작자 미상입니다. 먼저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해 주시는 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피조물과 구별되신 하나님의 인격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같이 한계 된 피조물이 아니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을 무릎을 꿇고 경배하며, 찬송하며, 예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3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5절)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9절) 하나님과의 교제의 필수는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를 사모하며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자 할 때에 어떻게 응답해 주시는 지는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삶에 주인이심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1,2절)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더 성숙되어져 가는 성숙한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 즉 우주 만물과 온 세상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깨달아 알아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이 시대와 주위 환경 그리고 삶을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깨달아 알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고난과 재난 등의 인간의 한계에 부딪침으로 인간의 마음대로, 뜻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온 우주 만물, 살아가는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구나!” “자기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구나!” 호흡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호흡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러한 삶에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찾습니다. 자기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을 찾습니다. 이러한 찾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뜻과 마음을 하나님을 빙자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까?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까? 하나님이 자기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까? 하나님이 자기 가정에, 자녀에게, 교회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까? 이러한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좇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의 말인 육체의 정욕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삶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그 뜻을 알고서 순종해 나갈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간구하며 살아갑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더욱 더 겸손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2. 하나님이 공의로 판단하심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인간은 공의를 견고하게 세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올바르게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 죄인입니다. 아전인수,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유익을 위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부패된 죄인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도 자기가 하면 사랑이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 말합니다. 변명과 핑계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한없는 좁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자기 마음에 맞으면 좋은 사람,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부모도 자기 마음에 맞으면 좋은 자식,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나쁜 자식이 됩니다. 인간은 생태적으로 불공정하고, 불공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 공정과 공평을 바라면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공의로 이 세상을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4절) 공의의 공이란 뜻은 히브리어의 마쉬파트 즉 판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의의 의란 뜻은 체다카 즉 올바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판단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만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만이 올바른 길을 갈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만이 올바른 판단을 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만이 올바른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만이 이 땅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에 최후의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인생이 제대로 살았다고 해도 하나님이 잘못 살았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 산 인생입니다. 아무리 인생이 맞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틀렸다고 하시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공의로운 판단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 심판자이심을 알려주십니다.

3. 하나님이 사랑으로 품어주심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신앙인은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이웃에게 알려주고, 하나님께 이웃을 위해 요청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이웃을 위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신앙인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중보자 역할입니다. 제사장은 자기 자신이 백성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주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자기 자신과 이웃들이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죄를 깨달을 때에 자기 자신과 이웃은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 죄책감에서 자유함을 누리려면 인간 스스로는 안 됨을 깨닫게 됩니다. 대속의 비밀이 나옵니다. 누군가가 대신 이 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것도 죄인인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무흠의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죄 없는 어린 양의 비밀입니다. 죄 없는 성결 된 희생제물을 통한 대속의 용서입니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6절) 시편 기자는 제사장을 세운 모세, 제사장이 된 아론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한 사무엘을 예로 듭니다. 신앙인이 자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바로 속죄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제사장들이 희생제물의 피를 시은좌에 뿌릴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은좌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희생제물의 피가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며 이웃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제사장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즉 용서의 은총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8절)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 자신이 주인이심을, 하나님 자신이 심판주이심을, 하나님 자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였음으로 해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갈보리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별해서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신 비밀입니다. 이는 이 은혜를 누리는 자를 통해서 이 은혜를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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