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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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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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31일            보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예레미아  1 : 4 - 10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때에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영안이 열린다” 이것은 영적인 눈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스스로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이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영적 체험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중요한 면접을 하기 전에 그 날을 기다리며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자기 자신의 앞날을 위해 중요한 면접이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이 소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면접을 할 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경쟁자들도 대단함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방의 책상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경건의 시간을 가지던 그 날에 묵상하는 말씀을 펼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8,9절)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에 기이하고 신기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확신이 옵니다.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 대신에 하나님께서 면접을 보아 주신다는 확신이 마음에 밀려옵니다. 면접날, 면접관 앞에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담대하게 대답해 가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대답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대답입니다. 그리고 그 면접을 통하여 합격하게 됩니다. 그 젊은 신앙인은 면접 후에 합격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면접을 준비하며, 면접하며 경험한 그 경험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더욱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하나님께 더욱 더 깊이 맡기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영적 체험이라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간구의 기도를 하며 그 문제의 해결을 찾았던 사람은 그 영적 체험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는 소명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남 유다 역사상 가장 경건하고 개혁적인 왕이었던 요시아 왕 시절에 부름을 받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뒤에 악한 왕들이 다스리던 남 유다 말기와 그리고 멸망한 뒤에도 사역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가 됩니다. 오늘 부르심을 받는 소명을 통하여 신앙인이 사역을 통하여 영적 경험을 하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봅니다.

1.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5절) 이미 하나님은 예레미야에 대하여 아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구별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못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합니다. 즉 소명의 거부입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6절) 이 말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모세와 기드온을 대표적으로 들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이끌 인도자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는 처음에 주저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합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 족속에서 구원할 자로 기드온을 부릅니다. 기드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합니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 크게 작게 소명의 거부는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신앙인이 사역자로 살아가는 삶의 순간순간은 소명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며,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소명을 거부하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느 유명한 화가가 사랑하는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친구의 딸이 부채를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미안한 마음에 딸아이가 가지고 있는 부채에 그림과 자기 자신의 사인을 해주려고 부채를 잠시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어린 딸아이는 싫다고 하면서 부채를 가지고 도망을 갑니다. 만일에 그 부채에 그림이 그려지고 화가의 사인이 써졌다면 그 부채는 후일에 엄청난 가치로 남게 됩니다. 친구의 어린 딸은 아빠의 친구가 누구인지 모르기에 그 부름의 가치를 모릅니다. 부채에만 눈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그 부름의 가치를 모릅니다.

후일에 화가의 친구는 딸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왜 이런 소명의 거부가 나타날 까?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아이라는 말은 아직 미성숙한,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에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인 자기 자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직 자격이 되지 않는 다는 고백입니다. 기드온의 약하고 작은 자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습니다. 모세의 말을 못하는 입이 둔한 자라는 것은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격이 없어서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자격입니다. 자격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학은 겸손이 아닌 부정적인 교만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누가 부르신 사역자를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부르셔서 세우시는 것입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지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을 조성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관자이십니다. 어떤 과정이던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부르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다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하게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그분이 부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절) 하나님의 아시고 구별하여 세우심을 확신하는 자는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걱정하는 것, 자기 자신이 염려하는 것, 자기 자신의 부족한 것, 자기 자신이 연약하고 무지하고 무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하여 주십니다. 즉 자기 자신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자기 자신이 사역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역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하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볼 일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떻게 하시는 지를 보는 일만 남습니다. 자기 자신의 평가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실 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됨을 알고 하나님의 임재를 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헌신을 원하는 젊은이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존경하는 사역자에게 물어봅니다. “제가 어떻게 하여야 존경하는 선교사님과 같이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연필이 되어 하나님이 쓰시도록 하나님의 손안에 쥐어 지십시오” 사역자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바로 하나님이 주관하여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국가들에 세우심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뽑고 파괴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는 도구로 삼기 위함입니다. 보는 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사용하셔서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하나님께서 세우심을 망각할 때에 자기 자신이 주관하며 하나님을 사용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러한 사역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임재를 보게 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7절) 하나님의 사역자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때입니다.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면 가고 명령하면 그 명령대로 말하라는 순종의 요청, 바로 이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영적 경험은 순종을 통하여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이 어디인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각오를 통한 하나님의 뜻의 찾음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을 부르시고 세우셨습니다. 제직으로, 임원으로, 대원으로, 교사로, 구역담당자로, 여러 가지 직분으로, 직책으로 불러 세우심, 이 모든 세우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는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됨의 기쁨을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함으로 풍성하게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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