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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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3일            말씀을 말씀으로
  설교 :     전  구 목사
  본문 :     골로새서  2 : 20- 23
웨스트체스터연합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평강을 전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힘들었던 2015년을 넉넉히 감당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여러 교우님들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며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렇게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준비한 말씀을 통해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들에게 또한 임직을 받으시는 제직들에게 도전과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되며 교회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감옥에 있었을 때, 주님께서 제일 처음 하신 일이 저를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표면상의 이유는 부패된 경찰의 모함이었지만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이 어려운 기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첫번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회개케 하신 일입니다. 사실 처음에 구속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을 때에는 그리 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언이 벌써 주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간 구속되어 있다가 풀려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3월 5일) 일반적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하고 있다가 그 다음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확정되면 그 기간 동안 일반 교도소로 옮기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2주 후에 저를 부르더니 짐을 싸서 나오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데리고 나갑니다. 얼마간 지나서 나를 내려놓은 곳이 중앙정보부 감옥소인 치포테(Chipote)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악명이 나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곳에 넣으십니다. 독방에 앉아서 있는데 두려움이 엄습해 오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는 고문도 있고, 사람도 죽고, 구타도 있는 정치범을 수감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사실 제가 있는 동안에 한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 절망적인 곳이기 때문이죠. 독방이라서 특히 더 힘듭니다. 간수의 얼굴은 볼 수도 없고, 그냥 구멍 하나 있는 곳을 통해서 식사가 들어옵니다. 간수는 인사도 없고 이야기도 금지되어 있는 곳입니다. 전기도 없습니다.

창문도 없고 사방이 벽이고, 위에만 1X1m 정도 크기의 쇠창살로 막혀있습니다. 너무나도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요. 얼마를 기도 했는지요. 그런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정말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이곳에 수감된 이유는 너를 수술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영적으로 암에 걸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암수술을 하기 위해서 수술실에 들여보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에 또 얼마를 기도했을까요? 그 암이 무엇인지를 환상을 통해서 보여 주십니다. 환상으로 책장을 보여 주십니다. 큰 책장이 있었는데, 많은 칸으로 만들어진 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칸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성경책의 이름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그리고 각 칸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책장 아래에도 무엇인가 쓰레기 같은 것이 쌓여 있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그 비전이 무슨 의미인지 가르쳐 주세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삶에서 성경 말씀을 기준의 근거로 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에 맞으면 받아 드리고, 맞지 않으면 쓰레기와 같이 버려야 하는 것이 믿는 자의 삶의 자세다. 그러나 너는 반대로 삶을 살고 있다. 너의 지식, 논리, 문사철과(문학, 역사, 철학, 과학), 가치관, 경험, 계획, 때로는 욕심 등 을 앞세우고, 그것에 맞으면 두고, 맞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그러한 저의 삶의 자세를 지적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살았다고 지적을 하십니다.

그런 후에 오늘의 본문 말씀을 보여 주십니다. 골로새서 2:20절 부터입니다. “너희가 세상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이 모든 것은 한 때 쓰이고 없어지리라.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 (self imposed worship / self made religion)와 (거짓된) 겸손 (false humility)과 몸을 괴롭히는데 지혜 있으나 육체를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영어로 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됩니다.

“ Such regulations indeed have an appearance of wisdom, with their self-imposed worship, their false humility and their harsh treatment of the body , but they lack any value in restraining sensual indulgence.” 무엇을 뜻합니까?

인간의 지식과 논리는 한 때 쓰이고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온전한 진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논리와 경험과 지식과 사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면서 믿으면 결국 “너희 자신을 신격화 하는 self-made religion 내가 만든 종교, self-imposed worship 내가 자초해 낸 예배를 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내가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내 뜻대로 맞추면서 세상 학문에 문학, 역사, 철학, 과학, 경험 등등을 동원해서 버릴 것 버리고, 붙일 것 붙이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기독교입니까? 아니면 나의 말씀을 기초로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면. ‘알았습니다’. 하면 됩니다. 주님이 창조하셨답니다. 그것으로 끝납니다. 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 과학 등등을 동원해서 설명하고자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논리에 맞추어서 받아들이는 것을 변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올바로 이해하기를 원해서 문학, 역사, 철학, 과학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본주의적인 것을 가지고 말씀을 판단하면,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말씀 끼워 맞추기가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되는 작업을 거짓 겸손으로 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경 말씀의 진리를 상대 비교적인 잣대를 가지고 인간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과 논리와 학문을 근거로 해서 판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합니다.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런 말씀을 향한 혼합주의적인 자세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변질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변질된 믿음은 반드시 말씀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자기 유익과 편함과 자기 누림을 추구하는 믿음 생활로 변질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하나님은 나의 일꾼이 되게 만듭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변질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회적 위치를 올려 주시기 위해서, 필요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 자식들의 성적과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없는 그 부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으로 격하됩니다.

때로는 financial consultant, family counselor, medical doctor, 때로는 mentor 정도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불편하고 거북스럽고, 사회생활에 손해되는 부분, 재정적으로 부담되는 하나님의 뜻은 적당한 합리화를 통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수준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죠.

이와 같이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를 경고하기 위해서, 창세기 3장에는 인간의 타락과 인간의 실패의 원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변조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사탄이 여자에게 물어 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말씀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 우리 인간은 죄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에 대한 변질은 죄로 이어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유를 말씀에 대한 변질이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에 저에게 이러한 나의 죄를 지적해 주신 후에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회개의 영이 부어지는데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후에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요. 말씀이 진리인데, 마치 신학과 사상과 경험과 논리등과 같은 인본주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질 했는지요? 신학을 배운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뭐가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성취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갖게 되는 취약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내 취향에 맞추고, 내 논리에 맞추어 받아 들이고, 잘라 냅니다.

세상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논리를 앞세우고, 효율성을 앞세우고, 손익 계산에 의한 계획을 영적인 원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워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있죠.

여러분, 우리 안에 진리가 있습니까?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논리와 학문과 경험의 축척이 인간에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나요? 진정한 선이 무엇입니까? 감옥에서 생활하면서 동료 수감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진정한 악도 없고, 진정한 선 또한 없음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판단은 모두 상대 비교적이고 모든 것이 부분적입니다. 성경에서 말씀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12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지적하신 영적 앎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많은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 없는 기도는 바리새인을 만들어냅니다.

누가복음 18장 11-13 절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의 차이는 가슴을 치며 드리는 회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슴을 치며 드리는, 회개를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초등학문 (내 논리, 내 가치관, 내 욕심, 내 지식, 내 경험)을 가지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 때문에,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주의적이기에, 자기 합리화의 대가들입니다. 어린아이로부터 시작해서 나이 드신 어른까지 자기 합리화는 전문가 이상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기 합리화의 도사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결정했을까? 어떻게 아직도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자기 합리화를 이렇게 잘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못된 것을 볼 수 없었으니 어떻게 회개합니까? 회개할 것이 없는 것이죠...괜찮아... 그 정도면 괜찮아 그랬으니 어떻게 회개를 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니 회개할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회개할 것이 별로 없으시죠? 내가 주님 앞에 흠이 없고, 점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자기 합리화? 말씀을 말씀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영적 변질 때문입니까? 말씀을 읽어도 기분 좋은 말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영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을 보면 은혜로 감사도 있어야 하고,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회개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회개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영어 목회부에서 두 분이 장로 안수를 받으십니다. 축하드리는 것이 아니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섬김의 자리를 허락하실 때, 일을 위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숙을 위해서 허락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성숙을 위해서 산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섬김을 자리를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성숙을 이루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노라” (에베소서 4:13)

기독교에서 성숙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함을 성숙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2:5-8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실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한 이 말씀의 핵심은 순종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숙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최종 목표가 순종이라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하는 그 분의 뜻을 행하는 삶이 되겠습니다. 새로 장로로 세움을 받으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예배하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순결한 영을 유지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계획과 편리를 위해서 내 마음대로 변질시키지 아니하고 내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화 시키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받아들이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순종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우리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그 날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6년 첫 주일입니다.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어떤 결단을 하십니까? 더 편해지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편해야 더 편하시겠습니까? 더 가지시기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움켜쥐어야 채워지겠습니까? 더 건강 하시를 원하십니까? 얼마나 더 사시렵니까? 우리의 존재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 들이고 순종하며 살 때 진정한 만족을 누리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다른 것보다, 자기 합리화를 버리고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늘 최우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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