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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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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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27일            온전하게 매는 띠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골로새서  3 : 12- 17
송년주일예배를 오늘 드립니다. 올 한해의 표어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온전한 동행(Perfect Together)이란 표어를 가지고 한 해를 지냈습니다. 역할을 존중하는 동행, 성숙케 하는 동행, 사랑으로 행하는 동행입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하며 여러분들의 믿음은 성숙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아시고, 여러분들이 느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얽매인 감옥살이 가운데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갇힌 자는 답답함, 얽매이거나 묵인 자의 부자유, 이로 인한 절망으로의 슬픔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억울한 옥살이라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아마도 전구 목사님께서 4개월간 감옥에서의 옥살이는 억울함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렇게 니카라과를 위해 열심을 다했는데, 돈이 무엇이라고 억울하게 하여 돈을 요구하는가를 질문했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억울함, 자존심이 상하고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 매임으로 절망의 시간, 이로 인한 슬픔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러한 곳에 찾아오는 것, 매임으로 인한 답답함, 이로 인한 절망, 그리고 슬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평강을 말하고, 기쁨을 말하며 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는 자, 찬양하는 자 그리고 이웃과 고난을 주는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 새 사람으로 거듭난 성도,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자입니다.

이러한 누림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매는 것에서 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14절) 마지막 점검,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온전하게 사랑의 띠로 매는 삶은 어디에서 오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그리스도의 평강!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구원의 확신이 가져다주는 평강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은총을 통한 평강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에 대한 깨달음과 고백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입니다. 대속의 사랑, 용서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먼저 삶의 진정한 고난의 원인을 아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 고난의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자기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존심, 착각, 자기 합리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는 자가 하나님 행세를 하며 살아온 슬픔을 알게 됩니다. 이를 통안 불안과 불평 속에 불만이 가득한 인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틀에 갇혀, 물론 세상이, 유행이, 문화와 관습이 영향을 주어 자기 자신이 만들어 온 틀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지 못하며 하나님에게 도전한 삶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깨달음과 고백, 이로 인한 멸망과 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집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 사랑의 확신 즉 대속의 사랑, 용서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이곳에 근본적 문제의 해결, 죽음의 문제의 해결, 영생의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로 인해 생명력을 되찾게 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의 확신이 우리 마음을 주장할 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장성한 믿음, 성숙한 믿음은 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는 폭과 깊이가 넓고 깊게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림으로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주장할 때에 여유가 생깁니다. 사랑의 확신, 구원의 확신! 이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 믿음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합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믿던 믿음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의 전환하게 됩니다.

그 사랑의 확신이 자기 자신의 틀, 보물 상자, 자기 합리화, 자기 생각, 자기 뜻에서 나와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기에 성탄절에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기에 부활절에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기에 삶 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뜻이 있어 주시는 고난임을 알기에 고난 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삶 속에서 찬양과 감사가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에는 소망이 있기에 고난 가운데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축복의 비밀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김을 알기에 믿음으로 미리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고 언제나 기뻐할 수 있음을 알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향한 뜻인 줄 알게 됩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감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찬양이 울려 퍼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감옥 안에 있는 죄수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돌보던 환자들에게 전염되어 고통을 당하지만 도리어 감사하며 더욱 더 섬길 수 있는 비밀입니다.

3.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지혜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아는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절대로 믿지 않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이를 고백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통한 용서의 은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스스로 하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처럼” “같이” “그리하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12절)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13절)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본받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불온전한 띠를 띠려고 합니다. 인간적인 것, 인간적인 사랑, 인간적인 뜻과 생각 그리고 인간적인 용납과 용서의 띠를 띠려고 합니다. 모임을 가지고 의논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화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로 용납과 용서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못 갑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속은 썩어가다가 언젠가 폭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그리스도같이, 그리스도처럼 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택하여 주신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해 주신 거룩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받은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한 용서의 은혜 안에서 그 용서받은 은혜의 빚진 자로서 이웃을 용서해야 함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본받아 살아가고 있는 지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인생이나 자기 환경과 조건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바라본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행하여야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17절) 자기 자신은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용서하시고, 대속해 주신 그 사랑에 힘입어 행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행하여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들어올 때에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기에 이웃의 실수와 잘못을 이해하여 줄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그 사랑 안에 들어올 때에 자기 자신의 허물과 죄를 알기에 이웃의 허물과 죄를 들춰내서 정죄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존 오웬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도 용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올 한 해 동안 믿음의 성숙은 복음의 능력을 얼마나 경험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용서 하였는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얼마나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12-14절)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지 점검하십시오. 이것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며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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