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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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13일            하나님은 나의 구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이사야  12 : 1- 6
신앙의 성숙은 삶 속에 평안과 기쁨이 충만해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마음에 평안과 기쁨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환경과 조건에 의해 오던 평안과 기쁨이 지금은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점점, 세월이 갈수록 오는 보람과 의미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이나, 환경과 조건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평안과 기쁨입니다. 사람의 반응에 의해 오는 평안과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임을 경험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고난이 다가와도 기뻐합니다. 고난은 완전한 멸망을 위한 징벌이 아니라 회개를 위한 사랑의 표현임을 알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주시고자 하셔서 주시는 고난임을 깨달아 기쁘게 여기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사랑의 넓이와 깊이는 사랑의 빚진 자로 섬기는 삶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느 신앙인의 추모영상에는 섬김과 겸손과 희생을 추모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분은 현재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우리 안에 심기웠고, 지금 수많은 열매들이 우리들 안에 맺어지고, 맺어져 있습니다. 참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직 포로로 잡혀가기 전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후에 구원받은 자의 감격을 본문에서 이야기합니다.

그날! 즉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이새의 뿌리, 다윗의 자손 가운데 구세주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원의 그날입니다. 구원의 약속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받는 감격을 노래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2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삶은 기쁨의 누림으로 나타납니다. 성탄절이 오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하며 즐기는 이유입니다. 그 기쁨이 어떠한 기쁨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구원의 기쁨은 죽음을 경험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구출해 준 사람을 통한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생명을 건진 구원의 기쁨입니다.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며 절망 가운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살고자 발버둥 치며 솟구쳐 본 자만이 아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삶의 물에 빠져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몰라 발버둥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바로 앞의 일도 모르고, 사면초가에 빠져 결국에는 마지막 호흡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은혜와 사랑에 대한 기쁨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은 자기 자신이 멸망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경험하지 못하면 경험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멸망과 죽음이 없다면 구원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줄 수가 없게 됩니다.

먼저 이 세상에서는 언젠가는 육체적인 죽음의 시간이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아는 자만이 천국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를 아는 자만이 오늘의 시간의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영적인 죽음을 깨닫게 되고 영적 무감각으로 죄를 범하고 있음을 감각이 없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아는 자입니다. 자기 자신이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주신 구원의 은총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노하셨음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으로 진노가 돌아섰음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육체의 욕심으로 인하여 죄를 지음으로 멸망에 이르는 연약한 피조물인 자기 자신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좇아 찾아가면서 죄를 지어가는 인생임을, 자존심으로 인하여 생명력 없는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뉘우침의 깨달음인 회개로 이어지게 됩니다.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호소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과 은혜 즉 복음 안에 거하게 합니다. 깊은 회개가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자기 자신의 실제적인 모습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깊이 담기게 됩니다. 이러한 죄를 거둬내며 자기 자신이 원본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영국에 호니라는 사람의 응접실에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그림이 있었습니다. 먼지가 너무 쌓여있어 흐릿하게 보임으로 먼지와 더러운 것을 떼어 내어 달라고 그림 가게에 부탁하게 됩니다.

가게 주인이 먼지를 조심스럽게 털어가면서 그림이 상하지 않게 닦아내려갑니다. 그 때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그 그림은 영국의 18세기의 유명한 화가 토마스 가버나인이 그린 그림 원본 불루보이였습니다. 먼지에 쌓여 있어 그림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지낸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인지를 다른 피조물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엉뚱한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피조물을 관리해야 할 특권을 가진 자인지를 알지 못하며 엉뚱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 자신의 삶이 의미와 보람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엉뚱한 삶을 살아갑니다.

2. 감사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1,2절) 주의 진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돌아섰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를 씻은 인생은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이제 자기 자신이 안심해도 됩니다. 먼지를 털어냄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한 자임을 알게 된 자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별된 존귀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임을 알기에 안심하게 됩니다. 주께서 자기 자신을 안위하신 것임을 알기에 주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삶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생의 약속을 믿기에 내일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맡겼기에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복음의 능력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곳에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노래이심은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의 찬양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자신의 찬양의 대상입니다. 목마른 가운데 사막을 걷던 나그네가 우물을 발견하여 물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해갈의 기쁨,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3절) 영생의 우물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3. 간증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4,5절) 극히 아름다운 일, 크고 큰 이름을 증거를 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온 세상에 하나님을 전하는 삶을 삶아가게 됩니다. 경험하고 누린 그 귀한 것을 이웃들에게 전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건진 사람은 생명을 잃어버린 이웃들에게 생명을 건지는 방법을 안 전할 수 없게 됩니다. 캐나다에서 의과대학을 나와 교수로서 그리고 부촌에서 의사로서 치료하던 에비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단의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조선 땅에 만삭인 부인과 함께 어린 자녀들과 파송되어 알렌 선교사님의 추천으로 광해원에서 제중원에서 그리고 고종황제의 주치의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평민들을 고쳐주다가 의사의 부족을 실감하며 조선인들이 서양 의술을 배울 의과대학의 필요성을 알게 됩니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 뉴욕 카네기 홀에서 미국 장로교단의 주최 선교보고 대회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의과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됩니다.

그곳에 참석하였던 세브란스의 마음이 움직여 최초로 조선 땅에 서양 의과대학이 세워지게 됩니다. 세브란스 의전! 설계가인 친구가 건물을 설계하는 재능기부를 함으로 서울역전 앞에 2층짜리 건물과 함께 조선에 최초의 의과대학이 서게 됩니다. 수많은 의사들이 배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브란스의전에서 의술을 배워 몽골에 독립운동을 위해 간 이태준 열사는 몽골의 전염병을 멈추게 하며 황제의 주치의와 함께 몽골 백성들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림과 동시에 그 사랑의 빚진 자가 되어 섬김의 사역을 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려움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콜레라의 창궐을 막으려다가 여러 질병에도 걸리면서 포기하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겨 나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관계가 없는 조선 땅에 사랑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기쁨은 구원의 기쁨, 감사의 기쁨, 간증의 기쁨입니다. 먼지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털어낼 때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이웃이 얼마나 존귀한지를 깨닫게 되며 보람과 의미가 있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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