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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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8일            진정한 신앙인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가복음  12 : 38 - 44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음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안타까움으로 인하여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도와 선교라고 말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삶은 복음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는 전도와 선교가 쉽지 않습니다. 더 더욱 안타까운 삶은 복음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복음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신앙생활 즉 입으로만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복음의 기쁨은 그림에 떡이 되게 됩니다. 아주 심하게 안타까운 삶을 살아갑니다. 복음을 전하면서도 복음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에게 전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적용하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바로 교역자들인 목회자나 사역을 하는 제직들이나 사역자들일 것입니다.

파바로티와 함께 공연했던 성악가 김영미씨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면서도 가사가 가슴에 와 닿지 않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회중은 울리고 우렁찬 아멘이 나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복음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은혜 안에 거할 때에 회중은 울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의 가슴에는 주님의 사랑이 적셔집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제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무리 하시는 시기에 위선 가운데 종교생활을 하던 서기관들과 헌금 궤에 헌금을 드리는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진정한 신앙인 즉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신앙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풍성함을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보람과 의미를 가진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떠한 사람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38, 39절) “서기관들을 삼가라” 어떤 서기관들을 삼가야 하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해석하던 사람들입니다. 서기관은 그 당시에 존경을 받는 직분이었습니다. 직분 자체가 존경을 받는 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존경이 자기 자신 자체가 존경의 대상으로 착각하는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직분의 존경이 직분자의 존경심으로 가는 것은 직분자가 직분자다운 사역을 할 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해석하며 삶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에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되기에 존귀하게 여김에도 자기 자신의 자체를 존경하는 줄로 착각하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착각하는 서기관을 삼가야 한다고 주님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착각은 존경에 대한 욕심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착각의 증상은 다른 서기관들이나 사역자들과 비교하여 다른 사람들이 존귀함을 받거나 아니면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질투와 분노가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 건강의 이상 증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기의 포로가 됩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것에 의해 사역이 결정되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자기 자신의 삶의 지배를 합니다. 체면의 포로가 된 사역을 하게 됩니다. 허영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권위를 의도적으로 들어냅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은 경건을 나타내기 위한 외식입니다. 흰 세마포를 두루마기를 입고 화려한 옷 술을 답니다. 예배와 말씀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 구별의 의미로 성의를 입는 것은 괜찮으나 자기 자신을 나타내려는 것으로 성의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삼가야 합니다. 신적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자기 자신이나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안수함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구별하신 것이지 자기 자신이나 이웃이 만들어줘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사울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권위를 보는 눈이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주신 왕의 직분을 자기 자신이 만들고, 백성들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임을 알기에 죽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왕의 권위가 신적 권위임을 인정할 때에 다윗은 신정정치를 하게 됩니다.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시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정치 종교에 대한 논의, 사회생활의 중심지입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그곳에서 퍼져 나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서기관들은 랍비라는 인사받기를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받기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를 원합니다. 회당의 높은 자리는 율법 즉 토라를 넣어주는 궤 앞에 위치한 자리로서 기도 인도자나 성경낭독자들이 앉는 자립니다. 종교적인 위치에서도 높아 보이기를 원함을 의미합니다.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상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잘 보이고 품위 있어 보이는 자리입니다. 세상에서도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즉 교만한 서기관을 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삼가시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스승의 은퇴식이 있는 자리에 가서 축하와 존경을 드리고 싶었던 미국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비서실장에게 최소의 경호를 부탁하며, 은퇴식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은퇴식이 열리는 강당에 앞에서 잘 보이지 않는 맨 끝자리에 앉도록 부탁을 합니다. 앞에서 답사를 하던 스승이 맨 끝 열에 보니 제자인 대통령이 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강단에서 내려가 대통령을 강단 위로 인도하자 대통령은 사양하다 순종하며 강단에 올라가 자기 자신이 온 이유를 간단하게 말한 후에 맨 끝 자리에 가서 앉습니다. 스승을 존경하고 감사하기 위해 온 것을 전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신적 권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으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합니다.

2. 믿음의 주체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40절) 서기관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기중심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형식적인 교제를 통한 내적 빈곤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허함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방법과 수단으로 삼습니다. 자기 자신의 세상적 욕심을 위해 신앙을 방법과 수단으로 삼기도 합니다. 종교지도자의 직분을 탐욕의 수단으로 삼은 종들이 타락을 언론을 통해 대할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동시에 복음의 전하는 자가 아닌 복음의 장애가 되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위선입니다.

과부의 가산을 삼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라고 주신 섬김의 대상인 과부를 섬기며 돌보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며 착취합니다.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하는 이웃을 자기 자신의 삶의 이용대상으로 여깁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사업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삼기도 합니다. 교회를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수단과 방법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대형교회, 교인 숫자를 이야기하고, 헌금 액수를 이야기합니다. 교회건물을 이야기합니다. 외식으로 길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진실된 대화를 나눔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신실한 종같이 보이려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이 될 때만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사용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살아가는 보람과 의미가 있는 인생입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과 무지와 무능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심의 기쁨은 더욱 더 충만합니다. 은밀하게 기도하고, 은밀하게 구제하고, 은밀하게 도우며 격려하기도 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며 사역자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함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기쁨을 누립니다.

3.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43, 44절)

놋쇠로 만든 13개의 연보 궤가 있습니다. 9개에는 성전 세와 제물, 4개는 가난한 자를 위한 헌금을 넣는 궤입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한 고란트인 두 렙돈을 헌금 궤에 넣었습니다. 렙돈은 그 당시에 가장 작은 화폐 단위입니다. 그러나 그 과부는 전부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액수가 과부보다 많아 많은 것을 넣은 것 같았지만 아주 인색한 헌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 그리고 정성입니다.

윌슨대통령이 몬타나주의 빌링이라는 도시 기차를 멈추고 잠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소년 둘이 대통령을 뵙고 싶어 갈망하던 차에 경호를 뚫고 대통령이 연설하는 바로 앞에 앉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은 마침 자기 자신이 들고 있던 작은 성조기를 대통령에게 드립니다. 그 옆에 있던 소년은 드릴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다가 주머니에 10센트 동전이 있음을 알고 그 동전을 대통령에게 드립니다.

지켜보던 대통령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10센트 동전을 받습니다. 윌슨대통령 서거 후 유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지갑 속에 들어있는 종이에 싼 채 들어있는 10센트 동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부인은 그 동전이 어떤 동전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 윌슨대통령은 그 동전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며 몸에 지니고 다녔을까요? 그 소년의 간절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신 신적 권위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믿음의 주체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도구가 아닌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임을 알게 됩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진실한 마음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나누는 진정한 신앙인의 기쁨이 있게 됩니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면서 나누는 보람과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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