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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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1일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24 : 1 - 10
사람들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제는 사람과 사람과의 사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업무상 하는 교제, 형식적인 교제, 마지못해 하는 교제가 있는 가하면 사랑의 교제, 실질적인 교제, 믿음의 교제들이 있습니다. 위선적 교제가 있어 결국에는 배신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진실한 교제는 결국에 이해와 치유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교제의 형태는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고난을 당해보면 진실한 교제를 알게 됩니다.

과연 여러분의 주위에 진실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라” “와 보라”고 말씀합니다. 매주 예배 시에 회개와 확신 즉 죄의 고백하고 주님 앞에 맡기며 용서의 확신을 고백할 때도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을 되새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께서 사랑의 교제, 진실한 교제를 통하여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겠다는 초청입니다. 선지자들이 오라고 초청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하는 이유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시온 산에 있는 예루살렘성으로 옮겨오면서 그 감격과 기쁨을 누리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편입니다. 다윗이 뛰놀며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사울의 딸이며 아내인 미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올린 찬양 시입니다. 1절에서 땅 거기에 충만한, 세계, 그 가운데 사는 자, 즉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2절에서 그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임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질문합니다.

산은 불변, 웅장 그리고 신비함을 줍니다. 그 중에 시온 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의 임재 즉 율법의 완성하신 예수님의 상징합니다. 시온산과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동시에 구원의 상징합니다. 하나님과의 경배와 교제, 즉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과 만남과 사귐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4절)

1.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깨끗함과 청결의 요청은 더럽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손이 더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손을 씻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의 더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은 마음을 청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손이 더러움을 전제로 하는 요청입니다. 인간의 마음과 행위는 더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능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원죄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셀 수 없는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자범죄라고 말합니다. 죄를 지어가는 것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육체의 본능대로, 욕심대로, 세상이 세뇌시켜준 대로 알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실체를 깨닫고,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데서 교제는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 앎에 자기 자신을 향한 긍휼과 은총을 구하는 자가 됩니다. “주여! 제 죄를 회개하오니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아는 자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의 정의를 이렇게 내려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긍휼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사랑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즉 복음의 진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기까지 사랑하신 대속의 사랑을 통해 용서함을 받음을 믿고 회개하며 그 구원과 용서의 은총을 통해 회개하며 확신하는 자입니다. 은혜를 누리며 사랑을 확신 하는 그리스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인 성육신과 대속의 비밀을 알고 확신하는 마음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어 갑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이 청결해졌기 때문, 그로 인해 삶이 청결해졌기에 하나님과의 만남 즉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2.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별하는 사람입니다.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교제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하나님과 교제를 나눕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교제는 구체적이게 되어 갑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를 알아가면서 가치의 변화, 중심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가치가 영원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 삶의 가치, 영적 가치를 알아갑니다. 자기 생각, 세상의 생각, 인간적 생각이 아니라, 자기 뜻, 세상의 뜻, 인간적인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교제를 가지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알기 원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원함을 살피게 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며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게 됩니다.

잘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씨름하기도 합니다.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임을 알고 일어나는 사건이나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6절)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는 야곱의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던 것을 생각하며 찬양한 것입니다. 에서를 가족과 종들과 가축들과 재물을 가지고 만나러 가던 야곱은 이제 형에서를 만나면 어떻게 될 지, 모를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형이 자기 자신을 죽이고자 한다는 소리는 이미 오래 전에 들은 상황입니다. 죽을 수도 있을 가능성이 많게 됩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을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하게 되며 얍복강 가를 야곱이 브니엘이라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기 때문입니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7,9절) 문을 의인화 시켜 머리를 드는 것으로 다윗은 비유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에 찾아오시는 영광의 왕이 들어오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사랑을 담기 위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을 여는 것에 중심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사랑을 믿어 용서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확신이 삶을 구별하게 만들어 갑니다.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으로의 변화입니다. 뜻을 허탄한 세상에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인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신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솔로몬 왕이 전도서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둔 뜻이 헛됨을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3. 진실한 다짐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된 거룩한 삶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그 사랑을 알며, 그 보내신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알 때에 자연스럽게 마음에 다짐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 뜻의 열매와 약속 혹은 결과를 알기에 다짐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짓 맹세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다짐을 할 때에 그 다짐이 순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오는 것에 다짐을 가지며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다짐해야 자기 자신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 다짐은 결단이 있는 다짐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의 다짐입니다. 해야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결단으로 행함이 있는 것이 진실 된 다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해서 하는 곳에는 얼마 안가 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결단을 통한 진실 된 다짐은 사명이 됩니다. 자기 자신의 희생을 결단하고, 자기 자신의 손해를 결단하고, 자기 자신의 멸시 당함을 결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짐하며 하는 사역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더욱 더 알아가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삶을 통해 알려주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의 은총을 아는 자만이 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사는 자만이 누립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진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진실로 다짐하며 실천하는 삶을 사는 자만이 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알고 누리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오라 부르십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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