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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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18일            간구해야 할 소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가복음  10 : 35 - 45
오는 주일 영어예배와 함께 공동예배를 드리고 2부 예배 후에는 제직 선출을 합니다. 처음으로 영어권에서 2명의 당회원을 선출하게 됩니다. 오는 주일은 개혁주일로 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기 자신의 신앙의 개혁을 다짐하며 그리고 하나님과 내년도 자기 자신이 드릴 헌금을 약정하여 서원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과연 바른 신앙 속에서 바른 헌금을 드리고 있는가? 내년에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정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들에게 신앙의 성숙의 기회를 주십니다. 병들은 신앙생활을 함으로 삶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나누지를 못하고 있지 아니한가? 잘못된 생각으로 하는 신앙생활을 함으로 삶에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나누지를 못하고 있지 아니한가? 틈틈이 점검하지 아니하면 헛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잘못된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세 번이나 말씀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엉뚱한 생각 속에 잘못된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잘못된 소원임을 가르쳐 주시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간구해야할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간구해야 할 소원은 주의 영광에 거하는 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주의 나라에 거하는 소원을 해야 합니다.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소원해야 합니다.

1. 주의 영광에 거하려면 고난을 소원해야 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자기 자신들의 소원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자기 자신들이 좌와 우에 앉게 해달라는 간구를 합니다. 그 영광은 세상적인 영광 즉 권력을 잡으셨을 때에 실세가 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이에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는 것으로 봐서 그들도 똑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출세였습니다. 고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있다는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나오는 고행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자 하는 데에서 나온 고행입니다. 행위로 받는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은혜입니다. 현대적 의미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미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 믿음으로 은혜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그 은혜와 사랑을 이미 아는 자가 그 은혜와 사랑을 갚기 위한 것일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게 됩니다. 종교개혁은 사실 잘못된 신앙관을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교권이 복음 위에 있고, 그 교권을 위해 교회와 성도가 존재하는 시대를 바로 잡기 위함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그 당시에 교황과 성직자들의 만연한 폐습을 바로 잡기 원했습니다. 면죄부를 팔아 그들은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고, 성경을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앞 서있습니다. 성당의 건물은 웅장하고 하려해져 가며 이를 통해 마치 교황과 성직자들이 위엄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복음의 본질은 점점 더 훼손되어 가고 외면되어 갔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권위를 회복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을 믿음으로 의로워 짐을 알려주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제사장임을 강조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주제입니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 문 앞에 95개 항목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글을 부쳐 놓음으로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올려 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곳이나 그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에는 고난이 따르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 세상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릅니다.

어느 미국 상인이 아프리카 방문했습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는 추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상인은 추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책은 옛날 문명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에 보던 책이라고, 지금 같이 과학이 발달된 시대에는 그런 책을 볼 필요가 없다오.” 추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일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벌써 내 뱃속에 들어왔을 것이요. 세상은 변하여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진리는 변할 수 없소. 이 말씀이 사람을 잡아먹던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든 것이요. 과학이 결코 우리를 변하게 한 것이 아니라오. 물론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님들의 희생이 있었다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간구해야 할 소원은 의를 위한 고난이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누리는 자의 간구해야할 소원은 고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고난을 소원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가신 그 길, 고난과 죽음이 있지만 부활이 보장된 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38절) 잔과 세례는 주의 영광을 위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 즉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는 소원이어야 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

2. 주의 영광에 거하려면 섬김을 소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웃에게 군림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높아지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인간의 죄 성은 곤고한 인생은 군림하고자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인간은 힘자랑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아주면 즐겁고 몰라주면 슬퍼합니다. 신앙생활도 군림하면서 하려 하는 경우들이 흔합니다. 물질로 군림하려 합니다. 사역으로 군림하려 합니다. 학력으로 군림하려 합니다. 출신으로 군림하려 합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군림하려하며 업신여기며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돈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너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헌금을 마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입원으로 착각하거나, 어느 기관의 입회비 정도로, 아니면 마치 어려운 사람들을 적선하는 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금은 다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드리는 자의 마음입니다. 자원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헌금만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헌금입니다. 그 마음으로 드릴 때에 정성이 있게 되고, 준비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헌금에 진실성이 있게 됩니다. 물론 헌금을 사용하는 데에도 신중하게 됩니다.

일주일 간 2016년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며 깊은 교제 속에서 헌금을 약속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간구해야 할 소원은 섬김이어야 합니다.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복음의 기쁨을 누리면서 복음의 기쁨을 전하게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45절)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삶은 섬기는 삶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군림하기를 소원하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섬김을 소원할 때에 그 섬김을 통하여 복음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섬겨주신 것 같이 이웃을 섬길 때에 그곳에 복음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2-14)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3. 주의 영광에 거하려면 희생을 소원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세상적인 가치에 손해를 보기 원하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이기심을 가진 것이 인간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닌 그 세월을 손해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들이 실세가 되고자 합니다. 그것도 다른 제자들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다른 집안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합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은 경쟁상대인 이웃인 베드로 형제, 집안보다 앞섰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자기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짐으로 피해보고 싶지 않아 핑계와 책임전가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45절) 대속물은 대신 속죄하는 희생제물입니다. 책임전가가 아니라 자기 책임입니다. 이웃을 위한 대속의 삶을 살기 원하는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면서 나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에 대한 소원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해 고난과 섬김과 희생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른 소원을 가져야 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누릴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주일과 헌금을 약속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지면 본인의 소원을 점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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