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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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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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11일            내가 어찌하면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욥기  23 : 1 - 17
인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뉴스에 관심이 많게 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보이는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찾고, 때로는 그것에 전적으로 의논하며 의지합니다. 그러면서 속기도 하고,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숙한 신앙인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쳐한 상황과 조건을 잘 살핍니다. 고난과 역경하면 떠오르는 성경의 인물을 욥입니다. 욥기는 먼저 욥의 믿음에 대한 것으로 시작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욥에 대한 평가는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며 악에서 떠난 사람 즉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재앙의 엄습을 통하여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자녀들을 모두 잃고, 부유했지만 가진 것을 모두 잃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21, 22절) 그런 가운데 육체적인 고통가운데 있게 됩니다.

아내에게 저주스러운 소리를 듣기까지 하면서 설상가상으로 육체적인 고통 속에 찾아온 친구들에 의해 정죄되며 회개의 촉구를 받습니다. 욥을 성경에서는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났다고 하는 데, 친구들은 죄를 지었음으로 회개하라고 권면합니다. 친구들의 권면의 특색을 살펴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죄를 지으면 고난을 당한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의 경험적 지식에 의해 회개를 촉구합니다. 빌닷은 욥에게 “고난은 틀림없이 죄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역사적 전통에 의해 회개를 촉구합니다. 소발은 “현재 죄를 짓고 있다”라고 말하며 만일이라는 가정 하에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정켤케 하시고 교훈하신다”라는 가정 하에서 교육을 근거로 회개를 촉구합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바스의 3차 변론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욥의 심정을 정리한 것이 2절에 있습니다.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2절) 육체적인 고통이 엄청남을 통하여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욥의 영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영적 갈등의 시간에 성숙한 신앙인이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려면 “내가 어찌하면”하는 질문을 하고 그 해법을 찾아야합니다. 신앙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승리하는 길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고난과 역경의 해결은 먼저 누구와 의논을 하느냐에 달립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아니면 무지 무능한 인생과 의논하느냐에 결과는 다르게 됩니다. 보기에는 보이는 인생에 소망이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피조물을 도구로 삼으셔서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욥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먼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3절)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뵙기 위해 애를 써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기 위해 애를 써야합니다. 하나님 만 바라보기 위해 애를 써야합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따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곳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하나님의 처소로 가야할 것입니다. 영적으로 구별된 곳으로 가야할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구별된 곳 즉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로 가야합니다. 한담을 나누면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곳입니다. 잠시 시원할지 모르지만 더 크게 아파집니다. 세상이야기 하는 곳에 가보았자 연약한 인생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처소로 나아가야 합니다. 욥은 이를 위한 노력했음을 고백합니다. “내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여겼도다”(11,12절)

2.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해야 합니다.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4,5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해야 합니다.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진실하게 모두 말씀해야 합니다.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답답함은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의 답답함과 목마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답답함과 목마름은 하나님의 응답을 깨닫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알기 위한 안타까움이 없는 신앙인은 사실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호소는 다른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즉 응답을 듣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3.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인간이 절대적 의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6,7절) 욥은 자기 자신의 기억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라고 애를 썼는데 왜 이런 고난이 오는지 모르겠다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욥은 먼저 한계 된 인간임을 잊어버립니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고, 의로울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인간은 상대적인 의인이 될 수는 있으나 절대적인 의인은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의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는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왜 하필이면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하던 그 사람입니까?”에 대한 질문이 사실 이곳에서 나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왜 저에게 이러한 고난과 역경이 내게 왔을 까?” 욥의 질문은 고난과 역경에 처한 인간 모두가 가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욥과 같은 온전한 신앙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이해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벌써 자신이 의롭다 생각할 때에 이미 죄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발견하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입니다. 온전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때에 연약한 인간이기에 자기 자신은 남들보다는 의로운 생활을 한다는 자만 감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피조물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신앙의 연단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욥은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믿음을 가짐을 보여 줍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13,14절) 하나님의 불변성과 절대성에 대한 욥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인간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인간의 그릇된 평가에 지나친 신경을 감정을 소모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무슨 큰 죄가 있는 것처럼 평가받는 것이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로 인한 억울함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에 순종하기 위해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분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확신하며 인내합니다. 삶 속에서 발견하기를 추구하며 나아가야 할 것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3절)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발견하기 원하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제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예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보기에 의롭다하여도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인내로 순종하는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슴에 적셔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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