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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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4일            등한히 여기면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히브리서  2 : 1 - 18
지난 일주일동안 여러분들이 보낸 시간들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었던 일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어떤 곳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왔는지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내는 동안에 삶 속에 진정한 평안함과 기쁨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바랍니다. 과거의 모든 시간들도 조용히 음미해 보기 바랍니다, 대부분이 출세를 위하여, 돈을 모으기 위하여, 이름을 내기 위하여 아니면 이웃이 자기 자신을 알아주기 위하여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는 다른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 교회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한 것을 등한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과연 무엇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가? 이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이며 주의하며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 삶이라면 불안과 한탄의 슬픔 속을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영혼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혼을 주셨습니다. 영과 영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죽으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변하여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영혼이 죽었다’ ‘영안이 멀었다’ ‘영적 감각이 없다’ ‘영적 귀가 어둡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용서를 통한 구원 즉 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구원을 통해 살아나고, 영안이 열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고,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주신 삶의 의미를 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사탄은 이것을 등한히 여기도록 유혹하고, 속이며 다가왔습니다.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무관심하면 삶의 현장에 생명력을 잃어버림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들은 것이 바로 큰 구원, 복음입니다. 복음에 유념하고 흘러 떠내려가기 않도록 마땅히 주의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을 통하여 비난과 박해를 받음으로 다시 유대인으로 돌아가며 복음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은 그저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3절) 복음에 대한 순종, 적용,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느냐 아니냐는 축복과 저주의 문제입니다. 성령의 열매와 육체의 열매를 맺느냐의 문제입니다. 먼저 영혼을 중요시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은 영혼의 문제이지 육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이 잘되면 모든 일에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먼저 영혼의 잘됨에 우선순위를 놓아야 합니다. 영혼의 성장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영혼은 배의 키와 같습니다. 만일 항해하는 배에 키가 없으면, 나침반이 없으면 목적지에 가지를 못하고 바다에 표류하게 됩니다. 인간이 고통가운데, 불만 가운데, 불평 가운데, 절망 가운데 한탄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6절)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존귀함을 찾아 무리하게 됩니다. 존귀하게 보이기 위해 꾸미게 되고, 과장하게 됩니다. 존귀함을 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미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아는 자는 그 존귀함을 누립니다. 오늘 본문에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자가 무엇이기에”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자기 자신과 그리스도인의 존귀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음으로 용서하셨느냐는 존귀함의 고백입니다. 천사와 비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신 분이 어떻게 천사보다 못한 인생 가운데 오셔서, 인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시며 죽기까지 하여주셨냐는 은혜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함의 고백입니다.

오늘날 삶의 모든 문제와 갈등 그리고 미움과 다툼의 현장을 살펴보십시오. 모두가 상처받고 상처받는 이유를 점검해 보십시오.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자기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이웃들을 고통에 몰아넣으면서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이나 배려가 없이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행하면서 사랑이라 말합니다. 이로 인해 상대방은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음에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함을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이미 존귀한 사람임에도 존귀해지려는 어리석음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신분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그 신분에 맞게 삶을 살아가며 누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군인의 신분임을 아는 사람은 군인답게 살아가며 군인의 맛과 멋을 누립니다. 그리스도인이며, 거룩한 백성, 새로운 피조물임을 아는 신앙인은 그 맛과 멋을 삶 속에서 누리며 살아갑니다.

다른 것으로 존귀해지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정에서 살펴봅니다. 가정에서도 권위로 존귀해지려고 합니다. 인정받는 것으로 존귀해지려고 합니다. 관계로 존귀한 것이 아니라 업적으로 존귀함을 누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교회를 예로 들어봅니다. 많은 교회들이 직분으로 존귀해 지려할 때에 교회는 갈등과 다툼으로 나아가면서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많은 교회들이 사역으로 존귀해 지려할 때에 교회는 갈등과 다툼으로 나아가면서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세로 존귀해 지려할 때에 교회는 갈등과 다툼으로 나가면서 평안과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직분이나 사역으로 존귀함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존귀함을 가진 은혜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린 믿음이던, 성숙한 믿음이던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사랑받은 거룩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불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용서의 은총을 등한히 여기는 곳에서는 그 존귀함을 잊어버리고 더 존귀해지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3. 거룩함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10,11절)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의 신분의 존귀함과 큰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이를 더욱 더 누리고, 전하기 위해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안에,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자기감정과 본능에만 충실하던 삶을 말합니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던 삶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은 그리스도 안에, 그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 구별 즉 거룩함이 인내와 용납을, 이 구별 즉 거룩함이 용서를 하는 능력이 생기게 합니다. 예수님은 인생과 같이 고난에 참여하심으로 우리들을 이해하시고 품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되어 살아가려는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으로 변해 가게 합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복음의 확신으로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알아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삶에 진정한 보람과 의미를 맛보며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나누는 복된 삶을 주시기 위해 부르셔서 성도가 되게 하셨는데 과연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등한히 여기고 있는 지에 달려있습니다. 이 땅에서 놓고, 버리고, 후회할 것을 등한히 여기지 않고 영생에 관계된 것을 등한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아니한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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