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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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27일            결국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에스더  7 : 1 - 10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들이 자기 자신이 그러한 신세가 될 것이라 알았다면 아마도 사형 받을 범죄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것에 결과나 결말을 알거나 맺어지는 열매를 알게 되면 조심하거나 성실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나쁜 결과나 결말이 맺히지 않고 좋은 결과나 결말이 맺혀지게 그 길을 가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의 종말,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피조물에 대하여 죽은 후에 천국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도 이 땅에서 제대로 보람과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부림절에 관한 내용입니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죽이려는 자가 죽게 되고, 죽을 자가 살아나는 사건을 통하여 에스더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만과 모르드개가 삶과 죽음이 역전이 되는 사건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오십 규빗의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게 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그 나무에 자신이 달려 죽게 됨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깨닫게 합니다. 모르드개에게는 구원의 종말, 하만에게는 죽음과 파멸의 종말을 보여줍니다. 하만이 오늘의 자기 자신의 결국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림절마다 하만은 유대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오늘날 우리들도 하만을 알게 되어 하만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원하는 예가 되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삶을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결국에 관한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부림일, 부림절! 바로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하여 하만에 의한 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섭리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하여 이 구원의 섭리를 이루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만이 해 주시는 일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순종을 통하여 역사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더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사역자들의 가장 근본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신앙의 열매의 근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은 경외심으로 나타나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함은 하나님과 관계되어진 것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대하느냐로 나타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인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만이 모르두개를 비롯하여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 시키려는 시도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은 이미 하나님의 저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함께하는 성도들을 얼마나 귀히 여기면서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게 됩니다.

에스더는 왕후로서 자기 자신의 생명과 삶은 보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 어떻게 되든 자기 자신은 왕의 그늘 아래에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민족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은 호화호식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요청을 받았으나 함부로 왕에게 나아가면 죽을 것임을 에스더는 말했을 때에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명을 일 깨워줍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3,14)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해주는 말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는 민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에스더는 가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보다 이웃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삶은 하나님 중심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사랑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함부로 다가갔다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왕에게 나아갈 수 있었던 비밀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더가 왕에게 규례를 어기면서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나아가기 전에 한 일이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부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15,16)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깨우침을 받고 변명과 핑계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깨우침을 받고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깨우침을 받고 생각에 잠기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깨우침을 받고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깨우침을 받고 즉시 화답한 것은 합심기도였습니다. 유다인들에게 합심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삼일간 금식을 요청합니다. 이 금식은 금식 기도를 의미합니다. 에스더도 금식을 하며 기도합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요청에 응답하여 민족들과 삼일 간 금식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사역자는 절제된 심오한 기도가 필수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자만이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이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역자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함께 기도할 것을 요청합니다. “인간은 못하지만 하나님을 하실 수 있기에 그분에게 모두 함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3.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도 있게 되었지만 금식 후에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즉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결단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것은 결단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역자는 거룩함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즉 세상과 구별됨의 결단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됨의 결단입니다. 신앙인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하는 구별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결단입니다. 이 결단은 가치를 알 때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더에 잔치에 초대 받은 왕과 하만이었습니다. 하만은 자기 자신과 왕이 초대 되는 것을 통하여 교만해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왕과 같이 초대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은 초대됨에 자기 자신이 왕과 같은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만은 자기 자신의 출세에 교만해집니다. 그 교만은 이웃을 무시하며 업신여기게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무시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이 무시할 때에 참지를 못합니다. 모르드개가 자기 자신에게 절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 같자 결국에는 모르드개 만이 아닌 한 민족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러한 모습은 크게 혹은 작게 인간이 살아가는 공동체에 있게 됩니다. 교만은 이웃의 무시를 참지 못합니다. 그 무시에 대한 분노는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것도 서슴치 않습니다.

결국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오십 규빗이나 되는 나무를 준비해 놓게 됩니다. 이제 에스더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왕이 에스더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잔치에서 표현됩니다. 아마도 에스더는 하나님이 간섭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2절)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사랑과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 때에 에스더는 때가 된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을 왕의 은혜에 맡기면서 왕의 결정을 존중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자기 자신과 민족의 구원에 대한 요청을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에서 나오는 담대한 요청입니다. 왕은 하만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왕은 에스더의 결단을 통하여 하만의 무서운 계획을 알게 됩니다. 이 계획을 알게 된 왕은 분노하게 되고 하만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역전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고 구원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민족과 모르드개는 초조한 가운데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자기 자신들과 모르드개의 구원은 불가능해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결단을 통하여 그 구원을 이루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과 세상의 결국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제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만과 같은 인생은 자기 자신이 만든 사형 틀에 자기 자신이 죽어갈 줄을 모름이 어리석음입니다. 인생은 이와 같은 경우들이 흔합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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