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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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9일            시편 묵상을 통한 영성회복
  설교 :     이연길 목사     [전 달라스 빛내리교회 담임]
  본문 :     시편  8 : 1 - 9, 121 : 1 - 8, 1 : 1 - 6, 23 : 1 - 6, 42 : 1 - 11, 18 : 1 - 7
8월 7일(금) 저녁집회 ‘별, 나 그리고 하나님’ (시 8:1-9)

시는 서정시와 서사시로 크게 나눠집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인이 어떤 자리, 배경에 있었는 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 시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에 의해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때에 사막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쓴 하나님께 드리는 시입니다. 중동의 멋은 밤입니다. 상큼하게 부는 바람과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입니다. 밤하늘에 쏟아진 수많은 별들! 지난 7월 14일 나사가 쏘아올린 우주선이 명왕성에 9년 6개월이 걸려(35억마일의 거리) 도착했다고 합니다.

우주를 감싸고 계시고 우주를 관통하고 계시며 우지 안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6)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다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 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1절) 하나님은 명백한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우주를 바라봅니다.

성경이 의심될 때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5절)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은 천사보다 더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의 골이 분명하지 않으면 인생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소망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세우셨다면 하나님께서 여건을 다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지만 걸어가다가 보니 하나님이 왕의 자리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알 때 비로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고난을 이기는 힘이며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8일(토) 새벽집회 ‘지금부터 영원까지’ (시 121:1-8)

하이데거는 인생을 “기투성, 피투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던질 수 있는 부분과 던져진 부분이 인생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의 성별, 키, 인종 등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하십니다. 본 시편은 순례객들의 찬송, 화답송입니다. 순례자들이 성전을 향할 때에 위험한 산 능선을 타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8시간을 거쳐 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전을 향할 때에 인도자와 함께 무리를 지어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지킴입니다. 본 시편은 지킴을 간절한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바벨론 포로 시 지은 시편으로 이해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 시편입니다.

히브리인은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체는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일(토) 오전집회 ‘복을 누리는 사람’(시 1:1-6)

히브리 문장은 제일 처음이 중요합니다. 1편의 중요성은 1편에 건국이념, 신앙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사막입니다. 사막은 계절마다 다릅니다. 건강한 사람이 4시간 사막에 있으면 죽게 됩니다. 사막에서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시편 1편의 중요한 구절은 3절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중요한 단어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그 중에서도 심겨진이라는 뜻은 자기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심겨졌다는 것입니다.

바로 다윗은 그 누군가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옮겨진 나무는 다윗, 이스라엘 그리고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인이 조성한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에는 토라 즉 말씀과 랍비 즉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내는 바로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나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물을 뿌리가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오시면 가다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마신다는 것은 먼저 즐거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척은 할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즐거움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묵상해야 합니다. 이 묵상은 중얼중얼거림을 의미합니다. 머리의 지식이 가슴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소의 되새김질을 생각하면 됩니다.
물을 마시지 않는 나무를 악인이며 그리고 그 악인이 맺는 열매를 겨 즉 속이 빈 열매(깡치)로 표현합니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시내에 흐르는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마음 속에 되새김을 통해 순종함으로 누리고 나눌 때에 복을 누리게 됩니다.

8일(토) 저녁집회 ‘고난에서 만나는 나의 하나님’ (시 23:1-6)

그림과 시에는 화가와 시인의 인생이 담겨있게 됩니다. 하브리인들의 문학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성경을 문학으로 읽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먼저 성경을 읽을 때에 그 배경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본 시편은 4절 즉 사망의 움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가장 어려울 때에 쓴 시편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그 사랑을 가지고 현실을 보면서 미래의 소망을 가집니다. 과거의 구원의 은총이 오늘의 소망을 가져옵니다. 은혜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은혜는 기억입니다.

과거의 다윗을 살펴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를 찾아가 왕으로 기름 부을 아들을 찾습니다. 다윗은 인정받지 못한 아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삼상 16:11) 아들 가운데 들어가지 못하였고, 건장한 형들 대신에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어머니 신앙교육을 엄격하게 시켰음을 시편 86:16절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이곳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을 주의 여종의 아들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증오하던 모압 여인인 룻의 증손자입니다. 그리고 천인으로 여기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 자신이 양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표현합니다. 목동이 양을 보호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9일(주) 새벽집회 “갈망, 갈망, 갈망’(시 42:1-11)

본 시편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편 중에 하나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모르지만 시편기자가 말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깊은 파도의 부딪힘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느낌, 이것을 신의 침묵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갈을 취한 후에 하나님은 13년간 침묵하셨음을 창 16:16과 17:1절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침묵이 오래가면 심판이 임합니다. 현대 교회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저주입니다. 회개는 다시 세워놓고 다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물이 필요해서 찾아갔지만 물이 없습니다. 이러한 곳을 와디라고 말합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간절한 마음이 있는 곳에 기적이 온다” 갈망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몸부림쳐야 합니다. 종교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갈망하는 신앙생활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일예배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시 18:1-7)

다른 시편과 다른 것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지은 시편이라는 점입니다. 사무엘 하 22장에 보면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자기 자신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지진을 겪으며 땅이 갈라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평소에 걷는 그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알게 됩니다.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믿음의 순종으로 가능함을 경험한 내용이 본 시편 32-34절에 열거합니다.

사실 사울왕과 비교할 때에 다윗은 더 열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겁탈하고, 우리아를 교묘하게 죽이는 엄청난 범죄를 행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중심에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 것이 다릅니다. 성령 충만은 기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본인의 의지로 담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시도록 자기 자신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여금 100% 지배를 받는 것이 충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 그 일을 감당할 은사를 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은사는 사용할수록 더욱 더 증가해 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건물이 아닌 사람을 원하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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