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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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7월 26일            어리석은 사람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4 : 1 - 7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똑똑하다, 지혜롭다” 그러나 듣기 싫어하는 말도 있습니다. “어리석다, 미련하다, 무식하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똑똑함을 알려주려고 아는 척도 하고, 맞는 다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웃보다는 더 알고 있고,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웃의 무식과 잘못된 판단임을 증명하려 합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지를, 자기의 의를 그리고 자신의 정을 표현하려하려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믿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대속의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지혜 시입니다. 다윗은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나 믿음의 본을 받기 원하는 신앙인이유는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말하고, 인간 중심 즉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절) 어리석은 자는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있다는 유신론자 같아 보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전에 예배를 드리면서도 삶의 현장에서는 무신론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삶 속에서 불안과 불만과 불평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그 순간순간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민하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있다면 그 또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주관하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삶 속에서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오늘 다윗은 이것을 마음의 부패로 가증된 악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를 못하게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관하심에 순종하지 아니하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삶 속에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자기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체에서, 배움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얼마나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사역을 하고 있습니까? 선교도, 직분의 사역도,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하지 아니하면 사역의 고귀함도, 거룩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나누지도 못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하지 아니하면 헛된 인생을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그 헛됨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어리석은 자는 영적인 감각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2,3절)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지 않는 삶은 악한 삶을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러한 삶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방법, 자기 가치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는 곳, 세상의 가치, 유행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자기 자신을 알리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못난 자아에 사로잡히면서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를 육에 속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자기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영의 눈이 멀어졌기에 하나님의 사인, 뜻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영의 감각이 없어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느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영적 감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 감각이 살아나는 것은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피조물임을, 자기 자신이 주관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지식과 능력의 한계를 아는 자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방법과 뜻이 틀 릴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체에 대한 자각은 회개와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살아가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감각이 더욱 더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주안에서는 배설물일 수밖에 없기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그리스도와 만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될 때에 영적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제대로 된 삶, 세상이 알려준 삶 속에서 고난과 헛됨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생, 즉 팔레스타인의 명문대학 나온 인재입니다.

사울 왕의 후손인 베냐민 지파, 남들이 알아주는 훌륭한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거룩한 신앙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지고, 거기다가 이중국적을 가진 로마 시민권 자였습니다. 그런데 삶은 정죄와 비판과 이웃을 해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인 어리석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죄인임을 통회하게 된 것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영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며, 자기 자신은 죄인 중에 우두머리라는 고백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따라가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얻는 사람입니다.

3.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 하는도다”(4절) 어리석은 사람은 감각이 없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 진리, 창조, 그리고 존재의 진정한 의미와 실체의 무지 속에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에 대한 무지입니다. 무감각과 무지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향한 거룩하신 뜻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그 뜻을 찾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에 보면 자기 자신의 뜻이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아 알려달라는 간구 속에서 어느 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그 뜻을 알게 되는 경우가 사건, 상황, 기도, 말씀의 선포, 우연하게 들려주는 주위의 조언 등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찾는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응답임을 성령께서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구나”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경험이 없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여 영적 감각이 없기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거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없다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절) 먼저 자기 자신의 실체를 고백하며 회개 하십시오. 자기 자신이 어리석은 자임을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영적 감각이 살아남으로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살아갈 때에 진정한 보람과 의미가 있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 삶은 주 안에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담대하게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단기 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사역한 후에 행복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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