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5년 7월 12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설교 :     이준형 목사
  본문 :     마가복음  4 : 21 - 25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본문 23절과 4:9절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4장에서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성경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씀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4장 전체는 예수님의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인데,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그 말씀을 듣는 청중들이 배우지 못한 일반 서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청중들이 혹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까봐 예수님께서 이해하기 쉽게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비유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씨를 뿌리고 농사짓는 일, 들에 핀 꽃, 하늘을 나는 새 등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그렇게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음에도 왜 예수님께서 이 마가복음 4장에서 두 번씩이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쉽게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그 때 모인 무리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은혜받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혜를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무뎌진 마음,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고대하고 기다려왔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눈 앞에서 천국 복음 말씀하시는데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말씀으로 은혜 받는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무리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제발 좀 귀담아 들으라!!”

지금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아서 천국 복음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말씀보다 말씀외이 것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리에 섞여서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먼저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저 사람이 누구일까?’ 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면서 옆에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겠죠. “여보시오, 저 사람이 뭐하는 사람인데 저렇게 말씀을 전하는 거요? 어디 마을 출신 사람이요?” 또 이런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 저 사람, 나사렛 출신인데 예전에는 아버지 따라서 목수로 일했다지요?” 저 마다 자신들의 관점과 시선으로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귀로 들려지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눈으로 보여지는 인간 예수님에 대해서 또 선입견과 잣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자신들의 생각에 더 중점을 두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외의 것에 집중하면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음에도 들리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듣는 것 보다 보는 것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내게 예수님 한 번 보여주면 믿어 보겠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님이 눈앞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이 백번 눈 앞에 나타난다 할찌라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왜 일까요? 분명 그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또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의 잣대로 먼저 진실 여부를 파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예수님 직을 직접보지 않았어도, 그 말씀만 듣고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귀를 열고 들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24절과 25절을 보자.

24절: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예수님께서 들을 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데 가감 없이 듣는 그대로 100% 믿는 귀가 복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헤아린다는 표현은 원어에 보면 ‘메트레오’ 또는 ‘메트론’ 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면적, 길이 등을 측정하는 목적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즉, 말씀을 들을때 너희 기준으로 헤아리지 말고, 측정하고 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을 전하시면서 듣는 무리들의 마음의 중심을 꿰뚫어 보셨다는 말입니다. “아, 이들이 지금 말씀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측정하고, 메트레오, 재고 있구나..” 지금 무리들 속에서는 자신들의 판단기준과 잣대인 메트레오의 기준으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이 말씀을 중간에 하신 것은 지금 무리 속에서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말씀을 측량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씀을 듣는 너희는, 그 귀는 복이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말씀 읽을 때나 또 들을 때 우리의 잣대가, 메트레오가, 판단기준이 작동하면 그 복된 말씀을 100%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이, ‘너희가 헤아리는 만큼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그러면, 또 덤으로 더 헤아려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그 말씀을 잘 귀담아 듣는 만큼 헤아림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이 듣고 있는 우리들을 헤아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주의 능력의 말씀이 우리를, 메트레오, 측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덤으로 더 준다고 하십니다.

덤이 뭡니까? 원래 받아야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그 이상의 은혜를 덤으로 더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들을 귀 있는 자의 축복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잘 들으면 그 말씀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을 살펴서 더 많은 은혜를 덧입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가 아닌 오직 말씀만 듣고 믿음이 생긴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사역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오실 때 사마리아 땅을 거쳐서 가시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인들은 역사적 갈등이 심해서 서로 교류도 하지 않고 그 땅을 거쳐 가지도 않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일부러 그 곳을 지나시면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 여인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나서 동네로 들어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요 4: 3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굉장히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처음에는 그 여인을 통해, 그 여인의 간증을 통해서 믿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친히 그 말씀을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믿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이사를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말씀만 듣고서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롬 10:17절 말씀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듣는가에 따라 그 믿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20장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게 되자 이 사실을 귀로 전해들은 어떤제자는 너무나 기쁘고 가슴이 뛰고 소망이 생겼지만 도마는 믿지 못합니다. 왜 일까요? 자기가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도마는 자신만의 메트레오, 판단 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다고 하는데, 증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도저히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보지 못했어도 듣는 것만으로 믿는 자가 복되다는 말입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에게 내가 복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주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을 우리 심령으로 받아서 말씀의 은혜가 우리를 측량하여 덤으로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더해 줍니다. 25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이 말씀은 들을 귀 있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의 그 결과가 어떠할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있는 자 들을 귀가 있는 자 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주시는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받겠지만, 없는 자, 즉, 들을 귀가 없는자, 자신의 메트레오를 가지고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는 자,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는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자꾸 은혜가 떨어지고 심령이 메말라갑니까? 우리의 귀를 열어야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은혜 받는 길이요, 말씀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내가 말씀을 재지 말고 내가 말씀을 무게 달지 말고, 어떻게? 로, 말씀이 나를 측량하도록 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를 측량하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측량하시면 우리의 연약한 심령을 만져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만져주시는 것, 그것이 은혜요 축복인 것 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 없는 도마의 그 마음을 읽으시고, 믿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 그 말씀 앞에 도마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도마는 보고 만져야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지만, 참된 은혜와 믿음은 주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도마가 깨달은 것입니다. 그 강권적인 말씀이 도마를 만져주셨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만지기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먼저 만져 주신 것입니다. 그때 도마가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참된 은혜와 축복은 주의 말씀이 우리를 만져 주실 때 우리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한가지는 우리가 말씀을 듣고서도, 또 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21-22절 보겠습니다.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등불은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등불의 용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등불을 말 아래에 둔다면, 등불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등불을 어두운 평상아래 두어도 안됩니다. 누가 등불을 나무 상자에, 됫박 속에 또 평상아래에 둡니까? 알면서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알면서도 말씀을 밀어내면, 알면서도 말씀을 내 생각의 나무상자 아래 또는 평상아래 두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말씀은 우리 삶의 등불이요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말씀 없으면 우리는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에서 헤메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 순간 말씀을 읽을때나 또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우리 심령에 새기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혹시, 마음속으로 ‘내가 다 아는 말씀인데, 전에 한번 들었던 설교인데….’ 그렇게 넘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은 정말 신비롭고 능력이 있어서 늘 알던 그 말씀도 오늘 내 삶에 다르게 적용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축복은 말씀이 심령에 임하여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통해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우리의 귀가 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 중에 마음이 완악해서 귀를 닫아버린 자들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내 잣대로 측량하지 말고 또, 우리가 스스로 말씀을 우리 마음에서 밀어내는 일이 없도록, 그저 그 말씀이 우리를 측량하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여서, 도마의 고백처럼,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 어린 아이들의 고백처럼, ‘나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제일 좋아요.’ 이 믿음의 고백이 우리들의 들을 귀 있는 자들의 ‘들음의 열매’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들을 귀를 가지고 말씀을 들음으로 그 믿음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또한 그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새겨져 우리를 측량하시고,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은혜와 축복을 덤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붙잡고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십자가 바라보고 승리의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