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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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6월 28일            기다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30 : 1 - 8
기다림은 자기 자신의 소망을 가진 기다림은 성취와 성공에 대한 기다림은 설렘을 가려다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과 상관없는 기다림은 초조함, 두려움 등이 있게 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에 어떤 모함에 빠짐을 알고, 선고공판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함께 합니다. 전구 선교사님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3개월을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되어 알리바이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드리지 아니하게 됩니다. 무엇인가 모함에 빠짐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기소된 상태가 됩니다. 토굴과 같은 감방에 계시다가,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에 15,000명이 수용된 교도소에 있게 됩니다.

무더운 날씨, 낙후된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 위에 행어를 걸고 7명이 누운 사람들 위에서, 그리고 식사도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수없이 재판은 연기되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던 선교사님이기에 상황을 알아보고, 단기선교가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지난 월요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뉴욕을 오전 7:00에 출발하여 마이애미를 경유한 후, 니카라과 시간으로 오후 2시(뉴욕시간 4시)에 마나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오신 선교사님과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날이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들이 법정 앞에서 저를 마중해 주었습니다. 법정에는 가족과 변호사만이 들어갈 수 있기에 법원 뜰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렸습니다. 오후 7시에 갑자기 내일 오전 9시 30분으로 선고를 연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실망하며, 통성으로 기도하던 중, 기쁨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무죄! 선교사님들이 모두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법정에서 사모님이 나오시는데, 너무나 초췌해져 있습니다. 나오는 우리들에게 현지인 경찰이 이렇게 말합니다. “헤수스 비바” “예수님 만세” 인생은 수없이 많은 기다림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다림은 다른 기다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믿음의 기다림입니다.

오늘 시편은 루터에 의하면 바울적인 시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전적이 타락과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에 대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참회하며 쓴 시편입니다. 신앙인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이어야 할까? 그것은 믿음의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용서의 은총을 삶에서 경험하는 복음의 경험의 기다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구체적인 사랑의 관계를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인의 출발점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되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됩니다. 그 동안 자기 실체를 깨닫지 못하며 살아가던 삶에서 자기 자신의 실체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믿음의 성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실체를 더욱 더 깊게 깨달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죄악을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의 눈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3절)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영안이 열린 사람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기다림은 믿음이 있는 곳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립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오늘 자기 자신을 통해서 무엇을 하실 지를 궁금해 하며 시작하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먼저 신앙인이 시작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 자신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선고는 피고인이나, 검사나 변호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주장은 할 수 있지만 법적인 심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죄수가 무죄로 나올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재판권자인 판사가 무죄를 선고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검사나 변호사나 피고인이 이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다면 본인들에게 불리하게 됩니다. 결국에 모든 권한은 판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검사나 변호사나 모두가 판사를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때로는 조롱합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심판주, 소유주, 양육자 혹은 인도자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는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 신지를 아는 자는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경외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외함을 가지는 자만이 임재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함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도 느끼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다림을 가진다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지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인생임을 깨닫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사함을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피조물이 사면권자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사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핑계를 대고, 그래서 위선을 하며 감춰보려고 하지만 권한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합리화시켜서 사면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4절) 용서와 사면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은혜와 은총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야 하는 실질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7,8절)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속량의 개념입니다. 풍성한 속량의 의미는 어떠한 대가를 통하여 종이 자유인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있던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으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근본 진리입니다.

그 믿음으로만이 그 자유함을 가지게 됩니다.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믿음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3.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1,2절)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의 구체적은 교제를 경험하는 것은 그냥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전구 목사님의 어려움을 통하여 많은 간증들을 듣게 됩니다. 니카라과 선교사님들께서 전구 목사님 댁에 모여 109일을 매일 오후 6시에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저희 교회도 월요일부터 금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전구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한국에서, 미국 각주에서, 그리고 호주와 여러 나라에 있는 전구 목사님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르짖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미경사모님이 사역하시던 학교에서도 매일 기도회를 가집니다.

어느 미국 목사님은 SNS를 통하여 기도모임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번 니카라과에서 한미경 사모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본인의 간증과 여러 기도하던 분들의 신비한 하나님을 경험한 이야기들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구목사님도 열악한 감옥이지만 은혜의 풍성함을 간증합니다. 신기한 것은 정치적인 배경을 가진 마약 딜러가 같은 감방에서 목사님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그 간구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간구여야 합니다. 물론 소리 지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간절함입니다. 내가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다고 한 이유입니다. 심령의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부르짖는 간구여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부르짖음을 가져오게 합니다.

자기 자신의 간절한 마음은 심령의 부르짖음으로 나타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시간들, 이해되지 않는 고난,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간구하는 삶 속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복된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허황된 기다림을 가질지 모르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간구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만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 자신을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려고 하실 지 궁금해 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 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5,6절)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기다림으로 모인 우리들,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신앙인의 진정한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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