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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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6월 14일- 2부예배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설교 :     이진혁 목사     [캄보디아 선교사]
  본문 :     요한복음  6 : 16 - 21
[여정]
지난 4년 반 동안, 저희 삶의 주된 주제는 캄보디아 선교사로서의 여정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캄보디아 교회의 여정은 우리들과 본문의 제자들의 여정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군중들이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함으로 피하신 후, 갈릴리 바다를 지나 가버나움으로 여정을 떠나려는 제자들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와 비슷하게 위기의 상황입니다. 요나는 폭풍 가운에 배 밖으로 던져져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후,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적 기도를 합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욘 2:3-5) 제자들의 가장 큰 불안은 요나처럼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17절) 왜 가장 어둡고 힘든 시기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는 것 같을 까요? 어쩌면 여러분 중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거나 그런 시기를 지내는 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어디에 계신가요?”

[어둠]
40년 전 캄보디아와 캄보디아 교회에 가장 어두운 시절은 1975년 4월 크메르 루즈가 권력을 잡았을 때입니다. 그들은 농경 공산주의 체제를 세우며, 나라 전체를 하나의 집단 수용소로 바꾸었습니다. 4년 동안, 인구의 4분의 1이상이 집단 학살로 비참히 죽어가면서 거의 이백만 명으로 줄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아주 작은 한 교회는 큰 아픔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90%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지역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킬링필드(죽이는 곳), 리빙필드 (살리는 곳)”라는 책에서, 크메르 루즈 집권 아래 순교한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더러운 자’, ‘불화를 일으키는 자’, ‘명예혁명의 적들’, ‘CIA 요원들’이라 불렸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포근한 나무 아래, 이슬에 젖은 잔디 위에 둘러 앉아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 해주며 그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십대의 군인들이 찾아와 그 가족들을 끌어내어 킬링필드 근처로 데려갔습니다. 그 곳은 참담했고 처형의 섬뜩함을 알려주는 흔적들로 죽음의 지독한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들 자신이 죽게 될 큰 무덤을 직접 파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근처 숲에서는 마을 사람들은 숨어서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달라는 헤임씨의 요청이 허락되어 큰 구덩이 옆에서 서로 손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헤임씨는 크메르 루즈와 자신들을 멀리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해달라고 큰 울부짖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때에 헤임씨의 어린 아들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숲속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헤임씨는 아주 침착한 모습으로 크메르 루즈의 지휘관 앞에 나가 그 아이를 죽이지 말고 자신이 설득해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헤임씨는 자신의 아들에게 돌아와 함께 같이 죽자고 간절히 불렀고, 나무 사이로 지켜보던 구경꾼들과, 크메르 루즈, 그리고 할 말을 잃은 채 무덤 옆에서 아직 무릎을 꿇은 가족들은 그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내 아들아! 그 숲에서 피곤과 비참함으로 남은 시간을 혼자 남겨지는 것과 여기 무덤가에 가족과 잠시 함께하다가 곧 하나님의 왕좌 옆의 천국에서 영원히 자유롭게 되는 것과 어느 것이 좋겠느냐?” 긴장가운데 덤불 속을 가르며 그 아이가 울며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가족들과 무릎을 꿇었습니다. 헤임씨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 고결한 사람들을 죽일 마음을 가진 군인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결국은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던 크메르 루즈 우두머리가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오늘날 캄보디아에 크메르 루즈는 더 이상 없습니다. 이 나라는 안정되었고, 그 무서웠던 곳에는 길과 건물들이 생겨났습니다. 교육은 향상되고, 경력과 직업을 위한 기회도 창출되며 경제는 빠른 속도록 확대되어져 어두웠던 과거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계속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크메르 루즈와 같은 공포는 아니더라도 타락한 세상의 삶이 있기에 바다와 어두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질문은 오늘 날,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미와 같은 대학생들이 해온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비록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해 왔지만 불교신자인 부모님에 의해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오늘 날, 비록 교인들을 사랑하며 전심전력을 하였지만 교인들이 떠나게 되어 목회가 흔들리게 된 목사님들이 묻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질문은 오늘 날,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질병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묻는 질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요?” 이 질문을 하나님이 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과 하나님의 부재는 그리스도께서도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그 어둠과 바다 속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분은 요나와 같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 가운데 예수님은 감히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됨을 가장 의식하고 어둠이 무엇인지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이 땅을 덮을 때, 십자가에서 외면당한 채, 완전히 홀로 남겨짐을 직접 경험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두려움과 고뇌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캄보디아에 있는 교회가 경험했던 그 어둠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어둠, 폭풍, 그리고 바다 또한 알고 계십니다. 어쩌면 오늘 여러분 중에 바다와 어두움 가운데 있거나 있는 분을 알고 있으며 캄보디아에 있는 신자들과 같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과 그리고 캄보디아에 있는 교회와 우리가 하는 질문에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바다의 깊은 곳, 죽음의 깊은 곳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능력을 아들에게 나타내심으로 응답하십니다. 역사상 가장 어두운 순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능력으로 그것을 구원과 소망과 영광으로 능히 바꾸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누구나 다 겪게 되는 어둠에 대한 최고의 답입니다. 어둠과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을 능가할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정립하셨습니다. 그 분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악과 죄도 쓰실 것입니다. 캄보디아 목사님들과 그 나라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크메르 루즈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이 그 비참한 수난의 시간동안 어떻게 교회를 지켜 주셨고, 어떻게 믿음이 확장되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래의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셨는지를 얘기합니다. 죽으면서도 주님을 담대히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시골과 태국의 난민수용소에 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에 의해서만 전해진 것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경멸하던 캄보디아의 일반인들에 의해서도 또한 전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어디 계셨느냐는 질문에 캄보디아의 교회들에게 주신 응답입니다. “나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요한복음 곳곳에 나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나님은 모세가 누가 구할지 궁금해 함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구할 자는 “나다”. 하나님의 주도권적 능력을 반영한 것과 항상 그들과 함께 했던 것도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다”라고 하실 때 그분은 아브라함, 이삭과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들 선조와의 약속을 기억하시며 들어주시고 위로하시고 구원해 주실 분도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기쁨]
예수님은 바다 한가운데 어둠속에서 곤경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고요히 바다 위를 걸으시며 능력을 보이시고 “나다”라고 밝히십니다. 자신이 바로 자기 백성의 고통을 아시고 구하시고자 온 하나님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오신 그 분의 임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그 분은 “나다”라고 선언하시며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하시며 안심시켜 주십니다. 이 임재하심은 또한 친밀하며 변함없이 계속 되어지는 임재입니다. 캄보디아의 대학에는 기숙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각 마을에서 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살 곳을 찾기 위해 애씁니다.

도시는 집세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척했거나 또는 협력관계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학생들이 안전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기숙사 선교를 합니다. 기숙사는 각자 고향을 떠나와서 그곳에서 한 가족처럼 지내고, 그 공동체 안에서 복음을 듣고 또 복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챈다의 삶이 가장 어두웠던 때에 그녀를 이끄시고, 친밀하며 변함없는 임재하심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임재 속에서 하나님은 결코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녀는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늘 그녀를 붙잡으셨고, 그녀가 어둠속에 있을 때에도 결코 버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대하여 들을 때 마다 제자 삼는 것에 종종 초점을 둡니다. 하지만 이 명령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명령의 앞과 뒤에 나타나있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 분의 임재에 관한 부분입니다. 선교에서는 복음을 나누고, 세례를 주고, 열방을 제자 삼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선교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의 약속 안에 살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제가 캄보디아 선교사로서의 여정에서 배운 교훈 중 하나입니다. 선교는 전 세계와, 이곳, 그리고 세계를 가로질러 캄보디아에 까지 그 능력과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분의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여정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 분의 임재하심이 우리와 함께함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어두운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확보되어진 것입니다. 그의 죽음과 능력, 하나님의 임재가 그분의 부활하심을 통해 나타났으며,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약속되어졌습니다. 기쁜 소식은, 승리의 왕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하심이 우리를 여정의 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21절)로 마무리 되어 집니다.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본향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 분의 임재가 계속되어질 영원한 본향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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