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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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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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17일            신앙인 다운 삶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 : 1 - 6
미국에 와서 많이 듣거나 편지 등에 많이 사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God bless you!" "God bless America" “고맙습니다” "Thank You!" 그러나 지금은 나아졌지만 오래 전에 고국에서 사용하는 말들은 부정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염병에 죽을 놈” “빌어먹을 놈” 자기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에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보리 고개를 면하지 못하는 가난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힘들면 “지지리도 복이 없지!”하며 절망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이런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인, 그리스도인이란 복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복을 누릴 수 있는 바른 길을 알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듣고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 비유를 통해서 그 복을 누리는 삶과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삶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살던 팔레스타인 지역엔 광야와 같은 지역이 많았습니다.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먹을 풀과 마실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푸른 초장과 물이 있는 곳을 그리워하고 확보하려 합니다. 그래야 가축들이 살아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메마른 땅에 나무가 잘 자라고 푸른 잎을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뿌리가 물과 연결되어 있는 시냇가의 나무들입니다. 악인과 의인을 시냇가의 심은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로 비유합니다. 시냇가의 심은 나무는 생명력과 안정성을 보여주는 삶 즉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지 못한 것을 빈껍데기 인 겨가 바람에 날라 다니는 것에 비유합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헛되고 불안전한 삶을 보여줌 결국에는 심판을 받고 망하는 불행한 삶이 됩니다. 자기 자신이 생명력과 안정감을 누리면서 이웃에게 그것을 보여 주는 삶입니다. 신앙인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면서 이웃에게 전하는 삶은 바로 복을 누리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즉 복음의 길, 그리스도의 길, 좁은 길이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당신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먼저 따르는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자기 자신이 무엇을 따르고 있는 가를 살펴보고 구별해야 합니다. 누구를 따라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악인을 따라가고 있는 지, 아니면 의인을 따라가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며 불순종하는 자를 따라가고 있는 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를 따라가고 있는 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생각으로 구별되는 지를 보면 알게 됩니다. 악인들의 꾀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악인이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악인들의 꾀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가 아닌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외면하고 유행을 따라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세상과 합리화를 시키려 유혹합니다. “다 그렇지” “다 그런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의 가치는 자기 자신의 욕심과 뜻과 접목됩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란 가치와 접목이 되면서 암투, 파벌을 만들며 당쟁을 일삼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란 가치와 접목이 되면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녀들도 희생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이란 가치와 접목이 되면서, “창피는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체면을, 모든 것이 자존심과 관계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욕심과 뜻과 자존심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자기 욕심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구별된 삶에는 좇아가는 것이 다릅니다. 좇아가는 것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진정한 인도자, 양육자, 보호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제대로 인도함을 받고, 양육이 되며, 보호를 받게 되어 그 길을 가면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삶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삶에는 정욕의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이렇게 좇아가는 대상을 구별한 사람은 그 들어서 간 길이 다르고 열매가 다릅니다.

그리고 서있는 길을 구별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있습니까?” 의인의 길에 서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어느 입장에 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서있는 길이 어느 길인지가 중요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있는 지가 중요합니다. 죄라는 것은 과녁을 잘못 맞히다 혹은 ‘실족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있지는 아니한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확실한 지 점검해 보십시오. 함부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살펴보며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서서 바라보는 것이 의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삶의 목적과 방법이 의로워야 합니다. 주를 바라보며 의의 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앉을 자리를 구별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자리에 앉아있습니까?”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겸손한 자리에 앉아 구별되어야 합니다. 자기 실체를 알지 못하면서 자기주장을 피며, 자기 자신을 높이면서, 자기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하면서 이웃과 하나님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아니한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역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 있는 비밀은 복이 있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좇아서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서야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낫게 하는 곳에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한 복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2절) 예수님을 좇아서 예수님의 사랑에 서서 예수님의 겸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신앙인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즐거워해야 한다는 하페츠라는 원어는 마음이 온통 한 곳에 쏠려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향하신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감동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며,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 열정으로 가득 찰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주야로 묵상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인생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낙담하며 힘들어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있을 때에 그 억울함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판결하는 판사가 인정하지 아니하면 실형을 받고 감옥에 있어야 합니다. 억울한 죄수는 그 억울함을 인정받기 위해 판사에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복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복을 나누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게 인정받고자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살피지를 않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좇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좇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기 입장에서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을 조롱하고 업신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복을 누리기 위해 누구의 말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누가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복을 누리는 그 길은 이미 여러분을 알고 있습니다. 누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행동 즉 순종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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