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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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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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3월 1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가복음  8 : 31 - 38
오늘은 삼일절 9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3. 1 독립 운동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l 16명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의 반이 기독교인들이 독립을 위해 서명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평안도출신이 11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던 마포삼열목사님(사무엘 오스틴 마펫)이 세우신 신학교 혹은 목사님이 평안도에 세우신 교회의 교인들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마포삼열목사님의 사역이 열매되어 나타난 모습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바로 설 때에 나라와 민족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의 복음이라 불리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러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이렇게 자신 만만하게 고백했던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소리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십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이러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32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항변하고 단정합니다.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발언인 동시에 죽음까지만 듣고 부활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자기 자신이 주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33절)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삶은 어떠한 삶일까를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삶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오늘 본문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삶 즉 제자의 원칙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34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러한 원칙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1.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죄의 시작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착각이 자존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존심! 자기 존재 가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인생을 주관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자기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이웃도 자기 자신이 주관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웃의 일에 참견하고, 조언한 후에 따르지 않으면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존재가치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3년간 예수님을 좇아다니며, 스승으로 모신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으신다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상식으로도 예수님을 만류하지 않는 것은 그 당시 문화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스승에 대한 염려는 제자가 가져야 할 당연한 덕목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사랑입니다. 세상적은 관점에서 베드로는 아주 좋은 제자, 역시 수제자다운 행동입니다. 칭찬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까지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만일 부활까지 관심이 있었다면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좋은 제자같이 보였지만 예수님의 꾸짖음을 받을뿐더러 베드로가 사탄이 됩니다.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인간적인 것으로 방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뒤에는 사탄의 역사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가?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을 때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경험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 자신 만만해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지 않고 찾지도 않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이웃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경청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경험은 하나님의 일같이 보이지만 사람의 일을 하게 합니다. 이성적인 생각 모두가 영적인 생각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다른 경우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결국에는 예수님이 잡히셔서 대제사장에게 끌려가셨을 때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하고 맹세하게 됩니다.“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마 26:74)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찾는 자는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2. 자기를 희생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주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을 하게 되고, 자기 뜻을 굽히지 않으려 하고,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높아져서 자기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자기 유익은 욕심을 가져오며 그 욕심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 속을 살아갑니다. 베드로의 욕심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유다왕이 되는 날 자기 자신이 일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 형제와 보이지 않는 일인자 경쟁을 해온 사실은 복음서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후에 죽으심을 이야기하니 베드로가 받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3년의 수고가 헛되는 것 같고, 다시 갈릴리 바다에 어부가 되기가 싫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고난이 자기 고난이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십자가는 자기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희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기희생을 할 때에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희생을 한 사람들입니다.

요즘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희생을 하려 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하며 자기 유익을 취하려 하기에 하나님의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론을 통하여 재물 때문에 무너지는 주의 종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자기희생을 통하여 이웃과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이웃 사랑을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납니다. 마포삼열목사님도 원래 과학에 취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해 자기 자신이 좋아하던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친구들도 포기해야 했고, 부모 형제자매와 헤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톨레도 출신의 알렌 선교사님은 자기 자신이 의술로 미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조선으로 가서 최초의 선교사 의료선교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출세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포기는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기 유익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서 자기 자신이 죽는 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것을 얻어보았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36, 37절) 요즘 더욱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은 사랑의 씨를 뿌리고 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의 열매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부인, 자기희생이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주님을 따라가며 하는 것이 될 때에 후유증 없는, 조건이 없는 사랑이 전해집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희생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입니다. 이사 가기를 원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느 소녀의 말입니다. “믿을 수 없어요. 내 주위의 사람들은 크리스천인지 모르지만, 절대로 예수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가난을 택하셨는데 우리 이웃들은 돈을 너무 좋아하고 예수님께서 항상 겸손하셨는데 주위에 있는 크리스천들은 높아지려하고요. 우리 이웃들은 놀고 즐기기만 좋아하거든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좇는 삶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요즘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해당되지 않아” “그 말씀은 목사들이나 해야 되는 것 아니야” 자기부인이나 희생이 없는 주님을 따름은 결국에는 사람의 일을 하게 됩니다. 자기부인이나 희생이 있는 주님을 따름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것은 주님의 영광과 인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사랑의 열매를 맺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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