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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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2월 8일            그리스도인의 사역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가복음  1 : 29 - 39
신앙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헌신이라는 단어입니다. 헌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자기 자신을 맡기는 곳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신앙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믿으면 맡기게 되고, 맡기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믿고 맡겨야, 그 열매가 의미와 보람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맡기고 나아가면 엉뚱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헛된 수고를 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제직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는 사역자로 헌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들로 믿음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맡김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 맡김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헌신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르심은 지체인 성도들과 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인은 삶 자체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한 헌신의 삶이기에 제직으로의 사역도 이 중에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의 길입니다. 동시에 제직들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사역을 통하여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모여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제직의 사역은 어떠한 사역이어야 진정한 헌신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역이어야 합니다.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어촌 마을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던 두 집안의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요한과 야고보를 예수님은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따름은 떠남을 의미합니다. 떠남은 있던 곳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신앙인의 떠남을 세상은 희생이라고 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름으로 포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가족을 떠나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와 같은 집에서 아내와 장모 등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직업을 포기하거나 떠나야 했습니다. 어부의 직업을 떠나야 합니다. 형제가 떠남으로 인해 그 집안에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해 못하는 가족들의 원망을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아픈 결단이 요구됩니다. 자기희생의 요구, 자기 부인의 요구, 자기 십자가의 요구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자기 자신이 세상적으로 안락한 곳을 떠남으로 사역을 향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직장, 좋은 환경과 조건을 떠납니다.

아니면 그 환경과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하며 소신을 가지고 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판사는 미래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립니다. 정부의 압력을 극복해야 했고, 현실의 실리를 추구하는 세력으로부터 힘든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물론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사명을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기도하며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주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각하며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사역자들, 제직으로, 선교사로, 목회자로 그리고 성도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희생하는 곳에 수많은 간증거리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 간증은 사역이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위에 선교사님들의 가정을 통해 경험합니다.

미국에 보장된 안락한 생활을 떠나 헐벗고 의료혜택이 없는 곳으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아마도 자녀들을 오지에서 교육하거나 살게 하고 싶은 부모들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녀들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자녀들의 대학이 걱정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역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손해를 보고 희생하는 것 같았으나 하나님은 그 필요를 채우시며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사역입니다.

지난여름 수련회에 영어권에 강사로 오셨던 피터 차 목사님은 흑인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 목사님의 형제자매들은 모두가 이세들의 귀감이 되는 지도자들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기 자신이 주관하는 영역인 자기 나라를 확장하려는 사람,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을 통해서 나타내려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도구로 사용해 보려는 어리석은 사역자에게는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인내와 희생 그리고 용서의 사랑을 전하려는 사람은 이를 경험하여 이웃에게 그 경험을 보여줍니다.

2. 기도하는 사역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 아직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나아가서 기도하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교제를 통해 예수님은 사역을 하십니다. 새벽 미명에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곤 하십니다. 기도가 없는 사역은 죽은 사역입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기도하기보다는 회의하기를 좋아하는 사역자들은 자기 사역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합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으니 결국에는 인간교제 속에서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마음에 들고 맞는 사람들과 사역을 하려합니다. 인간적 생각으로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분쟁이 생기고, 교회가 화려해지고 사역은 많이 하는 것 같지만, 교회가 부패되어가는 이유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진실 된 교제가 없을 때,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임을 잊어버립니다.

사랑을 전하기 위한 사역인데 함께하는 사람끼리 미워하고 시기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훼손될 것 같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중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피조물인 인간인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역은 이미 실패한 사역입니다. 긴밀한 교제는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게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실 된 교제와 대화를 할 때에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 갈 수가 있게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나 지시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갈보리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베풉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역이어야 합니다(38-39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38,39절) 예수님의 사역의 궁극의 목적은 전도입니다. “전도 하리니” “전도하시고” 전도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은 전도를 위한 도구입니다.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치유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치유 받은 사람들도 결국에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죽었다 살아났던 나사로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며 병자를 치유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보내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면서 복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누려야 할 것은 즉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역자를 통하여 사역자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사역의 열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리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사랑을 베풀어주는 곳에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이하며 사랑을 베풀어주는 곳에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희생하지 힘든 상황과 조건에서 이웃을 위하여 희생하며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역의 능력은 복음의 능력의 경험입니다.

공천위원회의 공천과 공동의회에 의해서 선택되어 제직이 되고, 자기 자신이 교회를 선택하여 교인이 되어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 같지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역자로 세우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전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알 때에 복음의 경험이 소원이 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지시와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과 의논하는 교제하는 기도가 없을 수가 없고, 삶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음, 주님을 따르기 위해 가족을 떠났지만 주님이 가족을 돌봐주시는 그 경험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님을 위해 희생했을 때에 하나님의 간섭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증거 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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