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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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11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29 : 1 - 11
경기장에 가면 선수와 구경꾼으로 구별됩니다. 선수는 몇 명 되지 않지만 구경꾼을 몇 만 명이 운집하기도 합니다. 선수와 구경꾼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선수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경기에 드린다는 점입니다. 구경꾼은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간접 경험하는 것이지 그렇게 몰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구경하다가 재미가 없으면 관심을 다른 데에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수는 경기장을 자기 마음대로 떠날 수가 없습니다. 신앙인도 선수와 같은 신앙인이 있는 가하면, 구경꾼과 같은 신앙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들에 온전히 선수 같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준 다윗의 감사예배시를 대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가며 찬양하는 데,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인생 자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인생 차체를 통하여 찬양하는 것은 일반계시라고 부르거나 자연계시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자연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하게 주시는 것임으로 특별계시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 매일 반복되거나 미진한 일상의 자연현상이 아니라 때로는 엄청난 소리를 통하여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며 두려움, 절대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천둥 번개가 치거나 토네이도, 우렛소리를 위엄찬 소리라고 표현하며 여호와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7번 반복되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어느 기간 광풍이 몰아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말씀의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고난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건이 되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됩니다. 불신자는 두려움의 소리이지만 신자에게는 약속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온전한 동행을 하자고 하면서 새해 첫 주를 시작합니다. 무엇을 목적으로 온전한 동행을 해야 할 까? 하나님의 위엄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는 삶에 동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절)하나님을 영광을 돌리는 삶은 삶자체에서 나타나야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배를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드리는지를 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먼저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거룩한 옷은 먼저 예배의 태도로 나타납니다. 먼저 예배자의 마음가짐이 예배의 태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마음가짐은 자기 자신이 예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절기 때에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특별한 옷을 입었고, 제사장과 이를 돕는 레위 사람들도 특별한 옷을 입었습니다. 특별한 것은 거룩함과 구별을 의미합니다. 세대의 옷을 입지 말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하는 그러한 모임과 다르며, 그 의미와 성격이 다름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대는 화려하고 감정적인 것에 치중하게 됩니다. 점점 더 화려해지고 오감을 만족하게 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란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에서 뉴욕을 방문하면 브로드웨이 쇼를 감상하기 원하는 이유는 그 연출과 무대의 화려함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거나 웃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곧 사라지고 잊혀져 갑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예배는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받으셔야 온전해지는 회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자에게 무엇을 보실 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화려함 보다는 진실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고 꾸미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며 드리는 예배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고백하며 그 치유를 맛보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겸손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기에 다짐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세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예배에 임합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다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여호와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잘 알고 있지만 잘 잊어버리는 것이 예배의 대상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여호와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거기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 될 때에 예배는 그 대상을 꾸미는 도구가 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할 뿐입니다. 예배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보다 직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보다 친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배를 보는 태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기다림이 있는가?” “준비가 있는가?”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가?” “만일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예배의 주체를 잘못 정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좋아하는 하나님,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 스타일의 하나님과의 만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예배의 주관자는 이미 자기 자신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빙자하여 자기 자신에게 예배를 드리려 하기에 아무런 예배의 기쁨이 없습니다. 어느 신앙인이 고난을 통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를 알게 되었을 때에 주일예배가 기다려지고, 수요예배가 기다려지면 교회에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즐거워지더라고 말합니다. 구경꾼 예배 자에서 선수 예배자로 변한 것입니다. 보는 예배에서 드리는 예배로 변합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11절) 하나님이 힘을 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보여주는 삶입니다. 입으로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예배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뜻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삶 속에서 구체적은 사례에서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달라졌다고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경꾼이 아니라 선수로 살아가야합니다. 선수는 코치를 보며 코치의 사인대로 움직일 때에 선수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영국의 신학자 백스터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많은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고 그의 훌륭한 저서를 칭찬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자신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펜이었을 뿐이네” 성 어거스틴이 자서전을 남기지 않은 이유입니다. 우뢰 소리를 통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엄함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더욱 더 하나님께 의지하며 담대하게 서게 됩니다.

이 믿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평강을 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마음에 깊은 평강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같은 죄인도 사랑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가면서 더욱 더 가까워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더 깊이 경험해 나가게 됩니다. 함께 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함께 가야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알고 드리도록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함께 해야 합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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