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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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28일            구원의 옷을 입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이사야  61 : 1 - 11
오늘은 올해에 마지막 주일입니다. 스폴전 목사님은 신앙인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기쁨과 행복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가 되어야 하고 감사와 예배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들에게 질문해 봅니다. “올 한 해 동안 즐겁고 행복하셨습니까?”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며 예배하셨습니까?” 만일 행복과 즐거움이 없었다면, 감사와 예배가 없었다면 삶의 뿌리나 근원 혹은 연결된 곳이 잘못되었을 것입니다. 삶의 뿌리가 자기 자신의 세상적 가치에 있었다면, 사람으로 인하여 즐거움을 찾으려 했다면 잠시의 즐거움과 감사는 있었지만 진정한 즐거움과 감사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환경과 조건으로 인하여, 이웃으로 인하여, 관계된 사람으로 인하여, 즉 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녀 그리고 사역자들로 인하여 즐거움을 찾았다면 잠시의 즐거움은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사람으로 인하거나 환경과 조건으로 인하였다면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함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을 벗지 않고 일 년을 지내왔다면 심령의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새 사람을 입지 않고 지내왔다면 심령의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오늘 본문에서 옷에 대하여 나옵니다.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 ‘찬송의 옷’입니다. 새 사람을 입는 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구원의 옷, 공의의 옷, 찬송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10,11절) 옷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신분의 변화로 표현합니다.

신분의 변화는 ‘여호와의 제사장’, ’하나님의 봉사자‘(6절)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분답게 살아가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분은 옷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지시받는 곳이 다르고 경험하는 것이 다릅니다. 성령의 임재, 성령 충만,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구원의 옷을 입은 자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합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1절)

피조물인 인간은 모두가 가난한 존재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하고, 자기 자신의 성실한 노력의 관리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순종을 하지 않으면 곤핍한 존재입니다.

가난한 자라는 히브리어 어원은 동사 ‘아나’입니다.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억지로 시키다” 고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세상으로부터, 권세자로부터 고통, 무엇보다도 사탄으로부터 고통을 받게 됩니다. 또한 “낮은 자세와 위치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면, 자기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보물 상자에 갇힌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육의 빈곤함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심령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부인하게 됩니다. 이것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가득하며,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별 것이 아닌 것을 절대화시킴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을 신격화시킴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보여주며 자랑하려는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곳에 좋은 소식은 영적인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 소식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소식입니다.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소식입니다. 즉 부활의 소식, 회복의 소식, 새롭게 됨의 소식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만 전할 수 있는 소식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인도나 상황의 인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도해야합니다. 복음이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인한 감동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은 결단과 적용으로 나타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삶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사용됨을 통하여 전할 수가 있습니다. 삶의 주체가 성령이어야 합니다.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뜻을 알고 순종함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결론적으로 삶의 중심이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 안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려는 영적인 삶”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것이 구원의 옷을 입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상처를 치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3절)

구원의 옷을 입은 자는 치유자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이웃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상처 주는 삶은 추측으로, 무지로 이웃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어리석음입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에서 이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치유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영원한 상처를 치유 받은 구원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구원의 옷을 입은 자는 위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슬픈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마음에 치유를 가져다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전도와 선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용서의 은총을 통한 산 소망을 가져다주어야 합니다. 얽매임과 슬픔 속에서 절망하는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 자유와 기쁨 속에서 소망을 가지는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고난의 장벽에 막혀 있는 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전합니다. 피해의식에 얽매인 자, 억울함에 사로 잡혀있는 자를 예수님 앞에 나아가 맡기에 하여 평안과 자유 함을 누리게 합니다.

3. 영광의 기쁨을 전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6,7절)

구원의 옷이 유니폼이면 옷이 신분을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제사장, 하나님의 봉사자가 구원의 옷을 입습니다. 이러한 신분은 하나님과의 관계된 존재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구원의 옷이 찬송의 옷임을 알게 됩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절) 구원의 옷을 찬송의 옷이라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낼 자임을 알려 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찬송은 기쁨에서 나옵니다. 그 기쁨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때 찬양이 됩니다. 의의 나무에서 영광의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옷을 입은 자의 삶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신앙인은 구원의 옷, 공의의 겉옷을 입으며 찬송의 옷을 입는 사람입니다.

삶의 중심이 하나님의 뜻인 공의를 완성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구원받은 은혜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그 은혜의 빚진 자로서 복음의 지시에 순종해 나갈 때에 삶을 통하여 진정한 찬송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015년에도 구원의 옷을 입고 공의의 겉옷을 걸치며 찬송의 옷을 뽐내는 귀한 삶을 살아감으로 믿음이 더욱 성숙되어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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