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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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14일            하나님의 뜻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 : 16 - 24
“주여 믿습니다.” 그리면서 주님께 맡기지 않는 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일 것입니다. 믿으면 맡기게 됩니다. 맡기는 곳은 믿음이 있는 곳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지 않고 맡기면 감시하며 의심하게 되어 즐거워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 뜻을 정하고 상대방을 믿는 다면 이용하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 맡김은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김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사용하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향하신 뜻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용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누림을 간증하며 전도와 선교를 하는 삶이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구원의 기쁨과 그로 인한 평강을 누리며,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삶의 순간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탄의 방해, 함정, 올무가 있기에 그것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다니며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6-18절)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누리는 삶을 이렇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본문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1.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16절) 언제나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대림절 세 번째 주는 기쁨을 의미하며 핑크색 초를 켭니다. 인간이 항상, 언제나 기뻐할 수 있을 까? 있을 때는 즐거워할 수 있는 데, 없을 때에도, 힘들 때에도, 어려울 때에도 아플 때에도, 죽음이 다가 올 때에도 과연 인간은 즐거워할 수 있을 까? 이것이 가능할 까? 만일 불가능하다면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지금 농담하시는 것일 까? 이러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실행하십니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연약한 인생이 행하려면 불가능할 것입니다. 신앙인이란 하나님께 맡긴 사람임이므로 영안을 열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의 정점, 결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 즉 용서의 은총을 통한 구원의 기쁨 안에서 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유, 주 만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삶의 중심이 구원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영생의 기쁨가운데 삶을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복음인 이유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 이유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구원의 소식입니다.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그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 안에서, 삶을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며 소멸치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19절)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주관하시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2.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삶은 항상 주님과 대화하게 됩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주님께 질문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이 순간에 어떤 것일 까? 주님에게 질문하며 응답받아가는 삶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으려면 깊은 교제를 통한 대화가 필수입니다. 주님에게 자기 자신의 짐을 가져다 드려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주님께 가져가면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 보라고, 그 고난 뒤에 승리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확신은 승리의 소망을 가져옵니다. 고난가운데 즐거워할 수 있는 비밀은 주님과의 교제이며 교제의 중심은 기도입니다. 숨을 쉬는 순간순간마다 주님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조건이 어떠하든지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없다면, 고난의 형편일 때 좌절하며 폐인이 되어갑니다.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갈 때에 교만하여 실족하게 됩니다.

다윗은 푸른 초장으로 다닐 때나,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알기에 자기 자신의 목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바울과 사도들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서, 고난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미앙이 문둥병자들을 돌보다가 자기 자신이 문둥병에 걸리자 이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손양원목사님께서 자기 두 아들을 죽게 한 사람을 양아들로 삼을 수 있는 이유도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믿음을 본을 보이는 분들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쉬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응답해 주십니다. 이미 말씀하신 것을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해 놓으신 것을 항상 간직하며 묵상해야 합니다. 바로 그 말씀 안에서 사건이 다가올 때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요셉의 믿음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베들레헴에서 있을 때나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나 감옥에 있을 때나 왕궁에 있을 때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기에 주위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형통함을 보게 되는 이유입니다. 요셉의 형들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 자신 앞에 나타나서 무릎을 꿇고 엎드릴 때에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면서 자기 가정과 주위에 모든 나라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구체적으로 깨달으며 용서와 관용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곳에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3. 자기 자신의 삶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삶이 어떠한 형편과 처지이든지 자기 자신의 삶으로 받아야 합니다. 과거 속에 현재를 부인해서도 안 됩니다. 다른 것과 현재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현재는 현재이며 각각의 세대와 시간 속에서 삶을 받아드려야 합니다.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수술 후에 완치되어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술한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알 때 신성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18절) 모든 삶의 터전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웁니다. 모든 삶의 터전이 사역의 현장임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삶의 터전이 감사의 조건임을 알게 됩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그 부모님이 누워계신 그 자체가 감사함이었음을 깨닫는 자녀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모든 일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하는 데, 어리석은 인생은 나쁜 것을 취하게 합니다. 모든 상황과 조건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 데 부정적인 것을 취하게 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1,22절) 그러므로 거룩하게 구별되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부룩스라는 신앙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편하고 쉬운 인생을 주십사고 기도하지 말고 모든 인생의 환경에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사고 기도하라” 지금 살아가는 삶과 자기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주 안에서 주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갈 때에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이웃과 나누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삶의 환경과 조건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으며 자족의 비결을 배우셨습니까? 살아가면서 주 안에서 생각하며 행동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주님의 생각과 뜻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려고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6-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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