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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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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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30일            주의하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가복음  13 : 24 - 37
오늘부터 새로운 절기가 시작됩니다. 성탄절까지 4주간에 네 개의 초를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기다림을 통하여 삶 속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절기입니다. 대강절(Advent)는 라틴어의 도착을 뜻하는 Adventus에 어원을 둡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 1:9)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왜 오시는 지를 빛으로 되새깁니다. 3개의 보라색과 1개의 핑크색 촛불을 밝히게 됩니다.

첫 번째 주는 희망을 의미하는 보라색 초를 켭니다. 두 번째 주는 평화를 의미하는 보라색 초를 켭니다. 세 번째 주는 기쁨을 의미하는 핑크색 초를 켭니다. 네 번째 주는 사랑을 의미하는 보라색 초를 켭니다. 그리고 가운데 흰 초는 성탄 전야에 켜게 됩니다.

대림절이라고도 합니다. 성탄의 기쁨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삶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임재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임재를 위해 마음을 그리스도의 삶을 태도를 음미하며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쁨으로 가다듬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사순절과 대림절은 같은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절제와 주의 고난에 감사하며 가다듬는 절기입니다.

성탄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탄생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는 성찬을 나누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순절과 대림절을 지킴은 같은 의미로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랑을 음미하며 자신을 점검하며 그 사랑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이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볼 수도 있고, 이 땅을 떠난 후에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오늘의 삶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임재 즉 복음의 능력을 경험함으로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깨어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1. 때를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때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때를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때가 있고, 인간이 알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있는 때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이 때가 지나가면 소용이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때를 알아야 합니다. 청소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장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노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을 하지 아니하며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고 꿈만 꾸다가 그 때를 지나가게 합니다. 인생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해야 할 때에 하지 않고 미루다가 그 때를 놓치는 경우들입니다. 해야 할 때에 다른 때를 생각하면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런가하면 인생의 어리석음은 바로 이 때를 알면서도 게으름과 불성실함으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고 알리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정하시는 때이기에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맡겨진 해야 할 때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만이 아시는 때에 대하여서만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32절) 바로 초림의 때도 인간은 정확한 때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때로 마찬가지입니다.

초림은 누추하고, 초라하게 오십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 목수의 아들로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들로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동방박사, 목자 등 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재림은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심을 말씀합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26절)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오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기다림을 가지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신앙인만이, 때가 되면 즐거움과 보람을 가지고 환영하는 마음가운데 주님의 재림을 보게 됩니다.

2. 징조를 아는 일에 깨어 주의해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28, 29절)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인간이 알 수 없지만 그 징조는 알 수가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징조는 그 때가 임박함을 알고 준비하게 합니다.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면 곧 여름이 오게 됩니다. 봄이 아주 짧은 것이 이스라엘이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창조와 자연의 질서 그리고 상황에 의해 하나님은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죄악이 관용할 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임박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체가 연약해 갈 때에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임박함을 알게 됩니다. 물론 정확한 때는 모르지만 그 징조를 통하여 곧 다가옴을 알게 됩니다. 이 때의 징조를 알게 하여 주는 것이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징조를 살피는 신앙인은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과 때를 아는 지혜는 바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곳에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코치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선수가 그 사인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그 사인을 따르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징조를 알고 깨어 주의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는 기도와 그 징조를 알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며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을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준비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정리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합니다. 오늘의 삶에서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3. 해야 할 일을 아는 일에 주의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히 이루어질 사실입니다. 인간이 이 땅을 떠나야 할 것도 분명히 이루어질 사실입니다. 징조만 알 수 있지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릅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줍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각각의 사무를 맡깁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어떤 종에게는 문지기의 역할을 맡깁니다. 주인이 없기에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주인이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주인이 언제 오는 지는 주인의 고유권한입니다. 주인의 마음이며, 주인이 정하는 것입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은 맡겨진 역할을 성실히 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실 주인이 언제 올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관심 그리고 자기 자신이 성실하게 하는 일에 관심입니다. 주인이 왔을 때에 그 결과에 대한 칭찬을 듣게 됩니다. 평가의 때가 있습니다. 사실 인생의 어리석음은 관심을 가져야할 때에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이단들의 어리석음은 종말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현실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거나 격리하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통하여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올무와 함정을 빠지지 않도록 깨어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의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내일 주님이 재림하신다 할지라도 오늘의 삶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바로 이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임재를 경험해 나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인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만이 과정에 보람과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삶만이 과정의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주인이 오는 지 안 오는 지에 관심을 가지는 삶은 과정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탄의 기쁨을 누린 자입니다.

대강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과연 삶의 현장에서 주의 재림을 바라보며 성탄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역할을 맡은 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쁨은 전하지 아니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아니한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아니면 내 자신의 죽는 날이 언제인지 궁금해 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오늘의 삶을 엉뚱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아니한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때가 언제인지보다는 오늘에 그 재림을 준비하는 삶이 주의하며 깨어 있는 삶입니다. 주님이 언제오시는 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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