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4년 11월 16일            깨어 정신 차리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 : 1 - 11
총명한 사람, 명철한 사람은 올바르게 제대로 판단하고 올바르게 제대로 적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머리는 차고 가슴이 뜨거운 사람” 상황과 사건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판단, 신중하게 객관적으로 살피고, 분석해 봅니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삶, 의미와 보람,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명철한 신앙인은 신앙인답게 적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 안에서, 사랑 안에서, 소망 안에서 적용합니다.

우리 교단의 목사고시는 목회자의 자질에 명철함이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1번 질문은 그 사례에 대한 성경, 헌법 즉 신앙고백서와 규례서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신학적, 역사적 지식에 대한 것을 인용하여 개혁신앙의 관점에 문제를 분석 파악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즉 냉철한 분석과 파악을 할 수 있는 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인이 머리가 차갑고 신중하게 살피려면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펴야 합니다.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기준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성경을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질문의 뜻을 파악해야 합니다.

2번 질문은 그 지식에 의한 목회자로서의 적용능력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적용할 때에 뜨거운 마음 즉 사랑을 가지고 적용하는 지를 물어봅니다. 그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온 적용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문제를 매 순간마다 풀어나가는 것이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신 뜻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란 가운데 믿음의 본을 보여 주었으나 잘못된 종말론으로 방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6절) 깨어서 정신을 차릴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면서 나눔으로 보람과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무기를 통하여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1.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2절) 전투에서 싸우는 군인들이 중요하게 보호하는 신체 부위, 몸 전체가 다 중요하지만 특히 머리와 가슴입니다. 머리를 다치면 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머리를 다치면 생각할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마비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머리는 판단하고 지시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다치면 생명에 지장이 있게 됩니다. 가슴은 심장이 있어 피가 돌게 하여 생명을 공급합니다.

심장이 마비되면 죽게 됩니다. 인간은 사탄의 공격으로 태초부터 머리를 다침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된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2절)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주의 날이 언제 임할지 자기 자신들이 알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어둠입니다. 어둠의 자식인 이유입니다. 알지 못하기에 보지 누리지 못합니다. 무지하면 어둡게 됩니다. 앞일을 알지 못하기에 믿음이 없으면 깜깜하게 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삶을 살아가면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생명력을 잃어버리며 엉뚱한 삶을 살아갑니다. 어두운 삶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길은 참 빛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만이 그 지시를 받고 객관적으로 자세하게 삶의 현장을 알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의 비밀을 누리고,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주 만 바라보아야 하고, 주만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아야 삶을 제대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대로 알려고 하는 우리들의 머리를 공격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는 사자와 같이, 바로 사탄, 마귀, 공중권세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머리를 공격해 옵니다. 머리를 뜨겁게 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혼란하게 합니다.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머리를 보호하는 것은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8절)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인 용서의 은총을 누리며 소망을 가집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고 회개함으로 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인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판단하고 살피고 분석하는 기준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세상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펴보는 삶의 현장이 객관적이며 신중하게 파악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 가?” 바로 이 기준에서 상황과 조건을 살핍니다. 이 기준에서 이웃을 살핍니다, 이 기준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판단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인간은 가슴에 감동이 있어야 진정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진정으로 삶에 적용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움직임은 은혜의 사랑의 체험 즉 복음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8절)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여야 합니다. 마음을 보호하는 흉패를 둘러야 합니다. 마음의 보호는 믿음과 사랑만이 보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감동과 믿음의 확신은 머리의 판단을 움직이게 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한 판단은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칼이 강도에게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해합니다. 그러나 칼이 외과의사에게 쥐어지면 생명을 살리게 됩니다. 가슴이 차가우면 자료는 정죄와 비판을 위해 사용합니다. 가슴이 뜨거우면 정확하게 판단된 자료는 사랑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기 시작합니다. 정죄와 비판의 자료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격려의 자료로 쓰입니다.

풍성한 지식을 가진 분이 그 지식을 복음에 도전으로 사용하다가 주님을 만나 후, 그 지식이 복음을 알기 위한 자료로 사용됨을 경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은혜를 받습니다. 중심 즉 마음의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따뜻해집니다. 바로 어둠의 자식이 아닌 빛의 자녀로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심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상황과 조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살핀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도구로 사용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됩니다. 권면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니면 격려가 필요한 상황인지를 살피게 됩니다.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곳에 자기 자신이 겸손한 삶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이러한 마음에 교만의 화살, 자존심의 칼과 창을 찌르려는 사탄의 공격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1절) 서로 권면하는 일은 서로 위로함을 의미합니다. 덕을 세운다의 세운다는 의미는 원래 건축용어입니다. 건물을 세워나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로 세우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를 성장시키시고 성숙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더 경험하게 하여 주십니다. 사탄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머리를 공격하여 잘못 알고 잘못 판단하게 머리를 뜨겁게 만듭니다.

그리고 가슴을 공격하여 가슴을 차갑게 만들어 정죄하고 비판하여 좌절하게 만들어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워나가도록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9.10절)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깨어 정신을 차려서 주를 바라보며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면서 보람된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6절)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