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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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2일            알게 하리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여호수아  3 : 7 - 17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제, 만남, 적용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실제의 생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경험하기 원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머리로 혹은 감성으로는 알기에 실제의 삶의 현장에서는 잊어버리거나 모르는 척하기에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유는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거나 듣는다하더라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듣고도 순종하지 않거나 제대로 순종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단강 도하사건입니다. 범람하던 요단강을 걸어서 건너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세가 홍해 도하사건을 통하여 지도자로서 더욱 담대해 질수 있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는 요단 도하사건을 통하여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로서 더욱 담대해 지게 됩니다. 요단 도하사건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준비를 요구하십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백성들의 거룩함과 지도자 여호수아의 담대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거룩함은 구별과 성결로 나타나야합니다. 구별된 신성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4절) 규빗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사이의 길이를 말합니다. 언약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리를 2000규빗, 약 900미터거리 유지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데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별된 성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5절) 그리고 인도자의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7절) 인도할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함으로, 모세와 동행한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동행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게 함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임을 나타내주시니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지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알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알려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알게 하여 주심을 알게 되는 비밀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복된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고 경험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해를 통하여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험과 전통으로도 안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과 순종으로 알게 하여주시는 것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중심은 믿음의 성장에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믿음의 성장의 시작은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함께해야 합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회개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용서의 은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자기 실체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여 주님의 은총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7절) 하나님의 말씀과의 만남에서 문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적 만남에 머무르는 곳에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달자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말로 들려질 때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지 못하고 전달자와의 만남을 가진다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자기 자신을 향해 들려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메시지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9절) 하나님을 알게 되려면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듣는 자가 누리려면 순종해야 할 지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시에 순종했을 때의 약속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구원과 승리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이게 일반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일반적 지시를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시라 하니 하는 신앙”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경건의 연습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누림에 의해서 전하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은혜와 사랑을 누립니다. 은혜의 빚진 자가 되어 그 은혜를 전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받았으니 고마워서 베푸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맛봄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의 궁극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의 표현은 다양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구제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구제에만 머무르면 사랑을 베푸는 좋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은 못 누리게 됩니다. 구제에서 복음을 알게 해야 합니다.

구제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로 합니다. 희생과 순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로 합니다. 물론 그 순교의 당시는 실패자 같지만 그로 인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기적과 같은 신기한 경험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삶 속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며 복음을 알게 됩니다. 공통적인 결론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 져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일반적 혹은 구체적이건 말씀대로 행하여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이 없이는 순종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15절) 요단강의 범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비와 레바논 및 헬몬 산의 눈이 녹아 내려 강이 범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두렵기에 순종하기 힘든 상황임을 나타냅니다. 막연한 지시를 그대로 행하는 것도 믿음이 없이는 두렵기에 순종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봅니다. 막연한 지시는 순종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미래에 알려준다는 것을 가지고 75세 나이에 정든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지라”(창 12:1-2) 미국의 어느 도시에 선교사의 선교보고를 들으며 마음의 감동이 온 부자가 있었습니다. “내가 해야지 ...” 그 감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기 위한 감동이었습니다. 전염병만 돌면 죽어나가는 선교지, 서양 의학이 필요한 선교지라고 보고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최초의 의과대학이 탄생합니다. 세브란스와 그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합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막연한 꿈의 지시를 붙잡습니다. 꿈을 붙잡고 현실의 고난을 이겨냄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과 형통함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이제 마지막 관문 앞에 놓입니다. 가나안 땅은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일반적 지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사랑의 나눔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랑, 인간적 사랑, 자기 사랑을 나누기에 하나님을 알아가지 못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이 사랑을 나누려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한 지시를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 지시가 어떤 사명을 위해 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요단강 도하사건이 바로 이런 예입니다.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범람하는 요단강에 ‘들어서라’ 그들은 각 지파에서 열두 명을 택하였습니다. ‘들어서라’의 의미는 들어가 계속 머물러 서있으라는 원어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 있는 위치는 요단강이 흘러내리던 것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설 때 밟고 있는 그곳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믿음이 요구됨을 뜻합니다. 그들은 담대히 들어섭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건널 때까지 그 곳에 서있습니다. 일반적이건, 막연하건, 구체적이건 하나님의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곳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이 사건을 성경에서 음미하는 믿음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기 원하십니까?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회개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총을 믿고 그 사랑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그 사랑을 전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감동이 오는 곳에 구체적으로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알게 되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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