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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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12일            진정한 기쁨의 원천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빌립보서  4 : 1 - 9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교회에서 사역을 즐기며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짜증과 불평, 불만을 가지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성도, 거룩한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과 사역을 감사하며 즐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을 감사하며 즐기며 살아갑니다. 직분, 사역, 삶 모든 것이 기쁨을 주시기 위해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

오늘 본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미워하며, 불만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 중요한 일을 하던 두 여인은 따로 사역을 하고 있음으로 교회에 영향을 주고 있음이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도 그 소식이 전달됩니다.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권면과 정죄는 어떻게 다른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권면과 정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느냐의 유무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절) 빌립보교인에 대한 호칭이 사도 바울의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사모하는 형제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의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의 면류관이며 자기 자신의 자랑거리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기쁨의 원천은 주안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역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으로 나타나는 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함께하는 사역을 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인간은 주 밖에 있을 때에 같은 마음을 품을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중심인 삶은 자기주장을 관철하려합니다. 자기사역은 자기 뜻을 이루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이웃과 비교하고 이웃과의 경쟁하게 합니다. 사역을 통해 경쟁하고 사람들의 인정받기 위한 인기경쟁이 일어납니다. 자기주장을 끝까지 고집하게 됩니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분쟁과 다툼이 되어갑니다. 사람들은 누구 나 다 자기 자신의 잘난 맛에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욕심의 차이는 있지만 욕심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 나 다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회개를 통해 용서의 은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끽해 나가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미약합니다. 점점 더 깊이와 넓이가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이것을 신앙의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점점 자기 자신 혹은 세상 안을 살아가던 삶이 주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주안에서 하는 사역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중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낮은 자세로 이웃의 사역을 존중하며 볼 때에 양보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기주장을 버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존심을 죽이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사도 바울이 관용을 알게 하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관용은 너그러운 얼굴을 말합니다. 용서하며 품어주는 인격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절) 바로 이곳에 진정한 동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옵니다. 이웃의 사역을 인정하며, 이웃을 도와주며, 이웃을 양육해주며 이웃의 양육을 받는 사역합니다. “당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당신의 기도가 없었더라면, 당신의 격려가 없었더라면 저는 사역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3절) 동역자들을 돕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동역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기에 협력하는 것이 간접사역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맡기는 사역을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절)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께 맡기는 사역입니다. 신앙가운데 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역에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우선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아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질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알기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알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삶에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멸망과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아는 자가 구원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사람의 확신은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신앙인에게 염려와 걱정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믿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 전혀 믿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자기 자신이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생깁니다. 바로 그것이 걱정과 근심으로 이어집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맡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면 평안한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그리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며 평안이 찾아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자만이 평안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은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3. 생각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참되고 경건하고 올바르고 정결하고 사랑과 칭찬 받을 만하며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에 진정한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의와 사랑 안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의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 안에 살아가려고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으로 이동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에 맡김으로 예수님의 생각을 따르게 됩니다. 주 안에 설 수 있고 다른 생각과 다른 방법 그리고 다른 은사들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기도와 간구를 통해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기쁨의 소식인 이유입니다. 복음은 슬픔의 소식, 짐을 져주는 소식이 아니라 그 짐을 주님이 맡아주심으로 그 은혜 안에서 가벼움을 누리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기쁨의 소식, 자유와 해방의 소식입니다. 복음인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구원받은 복이 있는 사람, 존귀한 사람임을 아는 기쁨입니다. 이제 옆에 계신 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보십시오. “당신은 내가 사랑하고, 사모하는 분입니다”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자입니다” “당신은 나의 면류관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쁨의 원천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누림은 함께하는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를 바라보십시오. 주 안에 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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