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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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31일            이제 가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출애급기  3 : 1 - 15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림이 삶 속에 얼마나 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세상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있을 수도 없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데서 오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시기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들이 삶의 현장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지를 확실하게 아는 경우들이 아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족, 교우, 살아가는 사회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선교지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웃의 필요를 도와주고, 이웃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진정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구체적으로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지를 알기가 힘든 경우들도 생깁니다. 그 사명을 받고도 언제 실제적으로 시작해야 하는지,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때인지에 대한 분별이 되지 않을 때도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사건입니다. 모세의 인생 120년 생애를 나누어 보면 왕자로서 화려한 시절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허무한 시절 40년, 그리고 지도자 시절 40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자에서 지도자로 전환되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인도자로 소명을 받을 때 어떻게 알고 그 소명에 순종해서 나갈까를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역자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이제 가라고 하시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부르심은 하나님의 지시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지시인지, 세상의 지시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먼저 마음을 점검해 보는데 있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자기 영광이나 자기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거룩한 사건을 통해 확인됩니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이 요령이나,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사건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 욕심에서 나온 사건인지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면 자기 관점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둔갑합니다. 고난도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의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한 것에 의한 하나님의 징계가 고난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는 사람이 신비함을 보게 됩니다. 신비한 사건은 인간적인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신비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사역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충당될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해 주심을 알게 됩니다. 모세가 살아가면서 경험하지 못한 사건입니다. 불붙는 떨기나무 사건입니다.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지시를 듣습니다. 인간적 상식으로는 불이 붙으면 떨기나무는 타서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떨기나무에 불은 붙었지만 타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불붙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면 불에 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적 상식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면 굶주린 사자에게 잡혀야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면 높아지고, 죽으면 살고, 희생하면 영원한 유익을 얻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맡기는 믿음을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만이 가능합니다.

신앙인의 간증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 가운데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그러나 그것이 완벽하게 해결됨을 경험합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난이 왔을 때에 신앙인들이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시기에,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일임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동역자를 미리 준비시키셨음을 깨닫고, 그것도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준비시켜 주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신비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도 목회의 현장에서 이러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 번 부임지에서 처음에는 목회지를 살피느라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결과 청년들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예수 안 믿는 수많은 유학생들이 보입니다. 톨레도 대학과 볼링그린 대학이 있습니다. 청년 사역에 필수적인 것은 찬양 팀이 있어야 합니다. 이 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찬양을 이끈 경험이 있는 리더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역 여건 상, 찬양 리더를 찾기가 아주 힘듭니다. 기도하던 가운데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찬양 팀 리더가 두 명이나 자진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지금은 두 분이 다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대학 복음화의 사명을 하나님이 그 교회에 주셨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모세는 유모이며 친어머니를 통해 양육 받으면서 히브리인들의 구원의 사명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됩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갈대상자에 넣어 공주가 목욕하는 나일강가에 보내 왕자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유모가 되어 생모를 통해 양육을 받게 됩니다. 왕자로서 인간적인 힘을 모두 기르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궁중에서 왕자로서 학문을 익히고, 체력을 기릅니다. 물론 싸우는 기술도 익히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노동에 시달리는 자기 동족을 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이 없자 주먹으로 쳐 죽이게 됩니다.

이튿날 두 히브리인들이 싸우는 곳에 싸우지 못하게 하자 도리어 모세의 자격을 물으며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 사람 죽인 것을 이르겠다고 하자 도망을 가면서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왕자였던 모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달아나게 됩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딸인 십보라를 만나 결혼하여 그곳에서 장인의 양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40년이란 세월이 흐릅니다.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는 8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1절) 물론 모세는 긴 세월을 지내면서 왕자의 자존심이 다 무너졌을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역의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부르시는지를 아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부르심의 유무를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 같지만 사역자가 해석을 잘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불순종과 주저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의 때를 보지 못하고, 늦어지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의 착각으로 자기 부인을 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기에 자기 자신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자격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려고 하니 자기 자신이 그것을 할 능력과 지식이 없기에 겁이 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 “내가 누구이기에”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보다도 자기 자신의 자격에 포로가 됩니다. “왕자 시절에는 가능하지만 지금은” “가진 것도 없고 힘도 많이 없는 이때에” 이러한 의문을 가질 때에 사역의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13절)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머물면 좌절감과 자격의 문제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격의 문제 속에 있을 때에 결국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성스러운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입니다. 사역의 대상들이 안 알아주면, 그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역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입니다. 대상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역을 하기가 힘듭니다. 역할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역을 받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택하여 지명하신 자가 하나님, 지시하신 분도 하나님, 사용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자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이 성직을 감당하는 삶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삶 자체가 영적 예배, 산제사를 드리려야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삶, 하나님이 주신 사명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12절) 하나님은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부르시고, 또한 셀 수 없는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특별하게 부르십니다.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함, 그리고 하나님의 때임을 알고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에 진정한 신앙인의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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