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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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24일            분별력 있는 삶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12 : 1 - 8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한 언행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고통 속에 넣습니다. 분별력이 없는 도움은 엄청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면서 고통 속에 몰아가는 이유도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도 사랑하기 위해 함께 하였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자녀들이 가족들에게 상처를 받고, 사랑해야 할 부모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사랑해야할 사람들이 상처 속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고 살아갑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는 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도바울의 사랑의 권면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법 즉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지 권면을 합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는 삶의 비결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 영적 예배를 드리는 삶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삶입니다. 삶 자체가 예배드리는 삶이란 뜻입니다.

양육강식, 경쟁에 이겨야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자랑과 자기 위시는 살아가는 동안에 필수요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희생을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입니다. 분별력이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신앙인이 진정한 사랑을 누리며 나눌 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절) 세상의 가치, 자기중심에 나오는 분별력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는 분별력을 가지는 것이 신앙인의 분별력이 있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거룩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분별력을 가지려면 먼저 이 세상과 격리된 삶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구별은 타락한 세상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다름을 아는데서 구별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이 틀릴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음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세상 재판에서 심증인 추측을 증거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물증을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시카고 트리뷴지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했던 시드니 해리슨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길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믿음이 바른 믿음이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의 문화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집필하는 저자나 강연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부제가 붙어 있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더 현명해지려면 여러분의 길을 바꾸어 나와 비슷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깊이 믿고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 중에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생각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것 중에 자기 자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자기감정을 믿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습관화 된 자기 행동을 믿습니다. 자기 자신의 문화와 전통 속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요즘 현대교회가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이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습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교회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교회, 첨단시설을 갖춘 교회, 건물을 자랑하며, 신앙은 자랑하는 것이 아님에도 자기 자신의 신앙이 있음을 자랑합니다. 선교와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열심히 하는 교회는 교회의 능력과 사역자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전해질지라도 자기 자신은 전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인간의 가치와 선호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맞아야 믿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예배 스타일이어야 예배도 드리고, 사역도 하려 합니다. 인본주의가 중심이 되어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가정, 교회, 사업체, 직장, 학교에서 구별되기 보다는 합리화시키면서 동화되려 하기에 하나님을 경험하기 보다는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별은 마음이 새로워지는 동기가 됩니다. 세상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가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마음이 새롭게 되면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하시고 기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시는 뜻을 찾습니다. 자기 자신이 기뻐하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뜻을 알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할 때에 성령이 알려 주십니다.

신앙인은 찾고, 구하고, 두드리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됩니다.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주여 보여주시옵소서! 주의 종이 따르겠습니다” 그 뜻을 찾은 후에 감당할 지혜와 힘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도와주옵소서! 주의 종은 무지와 무능하여 감당할 수 없사오니 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옵소서” 신앙인들의 기도의 중심이 바로 이곳에 있어야 합니다.

이 때에 삶의 현장에서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 바로 이것 이었구나” “아 주님이 말씀하시는 구나” “아 하나님이 맞는다고 하시는 구나” “아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구나” “아 하나님이 응원해주시는 구나”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구나” “아 회개하라고 하시는 구나” 그리고 완전하신 뜻이 아니라 온전하신 뜻을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그 뜻을 순종해 나갈 때에 깨달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함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함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장하는 과정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각자의 성장상태가 다름을 알게 됩니다.

3.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3절)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름을 알고, 인생이 아니심을 아는 신앙인은 인생이 각각 다름을 알게 되고, 신앙의 공동체에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각각 다름을 알게 됩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배경도 다릅니다. 믿음도 다름을 알게 됩니다. 어린 믿음, 장성한 믿음, 성숙한 믿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이며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의 삶은 자기 자신보다 어린 믿음의 사람을 도와주며, 자기 자신보다 성숙한 신앙인을 통하여 배움을 통해 양육되어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역도 다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역할이 다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도 다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사명도 다름을 알게 됩니다. 엘머 교수는 다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성서가 직설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죄 혹은 잘못이라고, 또 때로는 범죄라고 말하는 이외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은사도 다름을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4-8절)

이것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함을 의지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3절) 오버하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교만해질 때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습니다. 이러한 삶은 추측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추측을 확신함이 루머의 생산기지가 됩니다. 이웃을 억울하게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신 사명 안에서 생각해야 함, 그리고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 주신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웃의 역할을 도와줍니다. 이웃의 역할을 주관하고 심판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 역할에 충성하며 이웃이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귀한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의 곁에는 귀한 동역 자들이 있습니다. 그 동역 자들은 자기 자신이 주신 역할에 성실하면서 이웃의 사역을 격려하며 돕는 사람들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관계,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압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피조물의 다름을 알고 이에 하나님 중심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연결하는 분별력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면서 나누는 삶을 살아갑니다. 삶 속에서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삶을 사십시오. 그 삶만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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