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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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 17일            하나님이시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창세기  45 : 1 - 15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삶을 의미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 가면 만족함을 통해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으면 슬픔과 불안이 다가오게 됩니다. 슬픔과 불안과 불평과 불만은 자기 뜻대로 되어 가지 않을 때에 찾아오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자기 뜻대로 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최고를 추구하는 완벽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최고를 원하며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안 되면 비교하고 질투와 시기하게 됩니다. 물론 이웃에게도 완벽을 요구하기에 이해보다는 비판이 우선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죄로 인하여 욕심이 가득하고, 그 욕심을 모두 이룰 지혜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고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어려운 역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사람들은 그것이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난 가운데 무엇인가를 발견해 그것이 축복의 지름길 혹은 과정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이 고자질과 꿈을 이야기해서 형들을 화나게 한 것이 17세임을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창 37:5) 그리고 요셉이 바로 왕 앞에 서서 꿈을 해석하고 총리대신이 된 것이 30세였습니다.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창 41:46) 요셉의 13년의 고난의 기간을 요약해봅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의 상징인 채색 옷을 형들에 의해 찢겨집니다. 요셉의 화려함과 사랑의 특별함을 마감하게 됩니다.

웅덩이에서 죽음의 공포는 요셉이 사면초가로서 인간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한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는 편애 받는 아들의 삶에서 권력자의 종으로서의 낮아짐을 보여줍니다. 감옥에서 죄수는 자유에서 갇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13년의 고난 그러나 요셉의 삶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비록 형제였지만, 도저히 형제로서 할 수 없는 상처를 준 형들입니다. 원수 같은 형들, 그리고 자기 자신이 그 형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음에도 요셉은 이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절)

13년 고난의 기간 같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는 여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진정한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신앙인의 진정한 행복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경험하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입니다. 이러한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5절) 고난의 기간 동안에 요셉이 붙잡고 있었던 것은 꿈이었습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안에서는 요셉은 눈치가 없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청소년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아 자기만 알며 살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요셉은 인간성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7) “해와 달과 열한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9)

자기 자신이 가족원 중에 우뚝 서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실 것이라는 막연한 꿈이었습니다. 웅덩이 속에서도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체념을 통한 무기력한 종이 아니라 가정 총무가 될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것입니다. 감옥에서 억울함에 좌절하고 원망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고 간수를 도와 자기 자신이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수들을 돌볼 수 있는 비밀이 있다면 이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잡은 것입니다. 웅덩이, 보디발 집의 종, 감옥의 죄수인 갇힌 자였지만 요셉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립니다. 그러나 물론 이 꿈은 구체적인 것인 아닌 요셉의 막연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요셉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쓰실 것이라는 요셉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믿음이었으며 택하심과 사용하심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꿈이 구체화 된 곳이 바로 오늘 본문의 장면입니다. 그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가 자기들이 괴롭힌 형들이 모두 자기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처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들을 향하여 요셉은 용서와 관용을 말합니다. 원숙한 인격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기적인 성경에서 이타적인 성품으로, 정죄하며 고자질하던 삶에서 용서와 관용의 삶으로 변해있습니다.

요셉은 몇 차례의 시험을 통해 변화된 형들의 모습을 확인한 후 용서의 선언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숱한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이 주신 꿈의 실체를 발견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쓰신다는 확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통하여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고난을 인내로 이겨내게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소망가운데 자기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결국에는 고난의 의미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구체적인 뜻을 알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7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8절)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체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증하는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구체적으로 깨닫는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선교사를 비롯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의 안타까운 순간, 모자라는 기금으로 애타게 기도할 때 뜻하지 않는 곳에서의 정확한 액수의 기금이 도착할 때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신기한 구체적인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입니다.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 “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 때문에 하시는 구나” 아름다운 교회로 이전할 때에 오랜 기간 동안 성전을 가지고 싶어 하셨던 교우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부지가 안 되었을 때에 실망하였고, 유대인 회당을 사지 못했을 때에 실망했었는데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셨는데” 인성을 가진 요셉입니다.

특히 아버지의 편애를 받았던 요셉에게 13년간의 고난을 그야말로 힘든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웅덩이에서 생명을 건졌다고 생각하였지만 곧 종으로 팔려갑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하는 신앙의 결단은 감옥에 갇히는 죄수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실감을 나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용하심에 대한 실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택하여 주신 실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됨에 대한 실감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요셉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요셉이 고난기간 동안 하나님이 주신 꿈을 믿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하나님의 뜻인 사랑의 실천인 이웃을 위한 섬김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5절)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7절)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가족과 가문 더 나아가서는 애굽과 주위의 모든 나라들을 구원하는 그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누림과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됨에 대한 사랑의 누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믿음의 성숙을 가져온 자는 용서받은 형들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의 굶주림을 해결한 수많은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들과 형을 만난 요셉의 부모와 베냐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간접경험이었습니다. 직접 경험한 신앙인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전율하는 믿음의 경험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집니다. 순종을 통해 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누립니다. 이 누림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누구 신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생명의 구원, 영생의 기쁨이 고난의 기간이 축복의 기간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이웃의 구원을 통해 여러분을 사용하심을 경험하는 기쁨이었습니다.

남들의 믿음을 부러워하지만 마시고, 남들의 믿음을 탓하지 마시고 자기 자신이 누리시고 성장하는 것은 환경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에 순종하면서 누릴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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