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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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27일            복되고 형통한 길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28 : 1 - 6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 형통함이란 모든 일이 세상적으로 잘 되고, 풍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의 복과 형통은 사업이 잘되어 많은 이득을 남겨 재물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모아진 재물로 타락해 가던가, 하나님과 멀어져 가던가, 아니면 교만해져서 사랑하는 관계들과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과연 이러한 형통이 복일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의 형통과 복은 진급을 잘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형통이 복일까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가정에서의 복과 형통은 건강하고, 자녀들이 잘되고, 자녀 손이 많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형통이 복일까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부유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높은 사람도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낮은 사람도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선배들은 대부분이 고난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복 있는 사람들이라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작자 및 연대 미상의 지혜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신앙인들의 복과 형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4절) 형통의 사전적 의미는 뜻과 같이 잘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진정으로 누구의 뜻과 같이 잘 되어야 복일 까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뜻과 같이 잘 되어야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같이 잘 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자기 뜻대로 무엇인가 이루어질 때, 즉 형통하다고 생각하며 만족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뜻대로 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뜻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다 알 수도 없고, 다 할 수도 없는 피조물이기에 자기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자기 뜻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하여 화가 되거나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처 알지 못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일부나 부분만 알지 전부나 전체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욕심이 있어 결국에는 자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같이 잘되어야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아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자기 자신에게 진정한 복을 누리게 하며 형통하게 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만이 그 복과 형통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순종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 고난에 하나님의 영광과 진정한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벧전 3:14) 실제로 믿음의 선배들은 고난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했던 이유는 고난 받지 않는 것이 복과 형통인줄 알기에 주님에 고난을 피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2.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삶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2절)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실한 순종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뜻을 아는 자에게 순종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축복, 일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형통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는 역할을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의 관리의무를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준 임무를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아는 자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정의 예를 듭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3절)

가정의 비밀 장소에서 자기 자신에게 의존해 있는 아내가 결실하도록 도와주는 자기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돕는 배필로 주신 배우자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이 자기 자신의 역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역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행하려 하는 것이 간음입니다. 가정에 있는 자기 자녀들이 잘 성장하여 결실하도록 도와주는 자기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신 역할과 사명을 아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됩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 풍성한 결실을 맺어 나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역할을 감당하며 사역하는 가정이 됩니다.

요셉의 예를 들어봅니다. 요셉은 애굽의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갑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요셉이 그곳에서 종살이 하는 동안에 보디발이 본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봅니다. 이것은 요셉이 종살이의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손으로 수고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좌절하며 불성실한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심에 따라 성실하게 종살이를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가정 총무가 되어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위탁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4,5절)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역할과 사명에 성실한 삶은 함께하는 자에게 그 복과 형통을 누리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5절)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형통의 근원은 시온과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법궤와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이 시온과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복을 주십니다. 주 안에서 자기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전하는 가에 신앙인의 복과 형통함을 누리게 됩니다. 즉 삶을 통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순종으로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복이며 형통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 그리스도 안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고 있는 지,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평생에 보아야 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복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복과 형통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의 능력을 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이루어지는 것을 자기 자신의 삶에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사랑으로 인간의 능력을 보는 것은 신앙인의 복과 형통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주 안에 살아가기 위해서 성찬을 나눕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성실하게 순종하며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 복과 형통함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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