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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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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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6일            기쁘고 즐거운 이유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45 : 10 - 17
냉전시대 즉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세계가 첨예한 대결을 하던 시절에 러시아 구소련을 철의 장막, 중공을 죽의 장막이라 불렀습니다. 그 땅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갈 수도 없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중국의 국가 주석인 시진핑 내외가 방한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방문 후에 남한을 방문하던 관례를 깨고 남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진핑의 영부인인 펑리위안은 같은 의전을 받으면서 영부인으로서 외교를 펼칠게 됩니다. 남편이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주석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위치에 의한 권한과 영광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을 통한 부부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의 아가서라고 말합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신랑이 되신 예수님과 신부되신 우리들을 비유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천국에서 열리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비유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신 어느 권사님의 수의가 다홍치마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천국에 가서 주님 뵈올 것을 소망하며 준비한 수의입니다.

그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와 모습이 담긴 이유이기도 합니다. 왕의 결혼 축하시입니다. 성도들이 왕이신 예수님과의 결혼을 통하여 영광의 존재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장 부유한 도시인 뵈니게인의 수도인 두로에서 예물을 드리러 오고, 얼굴을 보기 원하는 존재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업을 상속받고, 왕의 아들인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쁘고 즐거운 삶이기도 합니다. 바로 신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되신 교회인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이 영광과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나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 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10절)

말씀을 듣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듣고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며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계획인 영생의 비밀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다른 하나님의 가치에 대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가치는 인간의 상식과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하고,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적 전쟁을 하는 이유입니다. 마음이, 관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김익두 목사님의 예화는 유명합니다. 황해도 안악 장터에 깡패 두목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특하였지만 과거에 낙방과 결혼한 후에, 사업의 실패 등을 거치며 자신의 주먹만을 믿으며 깡패 두목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를 받고 주님을 알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 사건은 유명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결단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이 예전에 알던 창녀를 만났을 때에 “어거스틴은 죽었습니다”라고 말한 이유기도 합니다.

결혼한 신부가 친정만 생각하고 매일 운다면 그것은 신랑에게 관심이 약해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관심이 딴 곳에 가있기에, 신랑에 대하여 알 수가 없기에 신랑의 사랑이 전해 오지 않게 됩니다. 신랑이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랑이 사랑하는 데 받지를 못함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 친정을 향해 있기에, 친정인 세상에 가 있기에 신랑의 사랑이 다가오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세상적 가치를 쳐다보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고, 들려오지 않게 됩니다. 친정은 익숙합니다. 친정인 세상을 살아왔고, 지금도 세상 속을 살아가기에 그리고 습관화되어 있기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신랑은 아직 낯설게 됩니다. 신랑을 알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모습은 거룩하거나, 경건하며 영적인 구별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1-24) 그리스도인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진리에 대한 소식 즉 복음을 듣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을 동시에 알려줍니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그에게서 들어야 합니다. 영적 죽음을 알게 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인 옛사람인 자존심, 자아, 자기 자신인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영적 부활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먼저 구별되는 곳에 즐거움과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특권 즉, 영광과 영적 열매를 맺음이 시작됩니다.

2.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 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 지어다”(11절)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곳에 주님의 사랑이 다가옵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이제 자기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사신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분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신분의 변화를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 적 가치에 순종하며 살아가던 삶에서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순종은 주인이심을 표현합니다. 주인이라 말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며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알게 됩니다. 순종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망동 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이 없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는 아닌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함이 없는 예배를 드렸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는 아닌 것입니다.

3.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수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14,15절) 신부와 들러리들은 자기 자신들의 마음대로 왕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잘 모르는 그리스도의 왕국, 지리, 법도,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랑이 되신 왕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모르기에 알아가게 됩니다. 애굽에 총리대신이 된 요셉은 꿈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 의미와 사건은 모릅니다. 그러나 사건들에 의해 자기 자신의 생각과 의도와 상관없이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무릎을 꿇었을 때 꿈의 구체적인 의미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정과 가문과 나라와 주위에 나라들까지를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열매는 구원의 열매였으며 요셉은 그 도구였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도를 받으려면 인도자를 바라보고 좇아가야 합니다.

성령을 좇아가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하여 열매를 맺어갑니다. 이것을 왕의 아들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영적 자녀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성령의 열매는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는 평안과 기쁨의 열매이며, 이웃에게는 그 평안과 기쁨을 전해주는 영적 열매들입니다. 이러한 영적 경험을 할 때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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