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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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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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6월 15일            성도의 문안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고린도후서  13 : 11 - 13
만날 때에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문화에 따라 다른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각 나라마다 인사하는 것이 다름은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공통된 생각을 나타냅니다. 문안인사가 한국에서는 주로 이렇게 말합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식사에 대한 염려를 담은 확인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보리고개 즉 춘궁기를 겪는 어려움이 인사로 나타나는 것일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평안에 대한 염려를 담은 확인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외부의 침입을 많이 당하였기에 능동적인 인상이 아니라 수동적인 인상이 됩니다. 미국의 인사를 살펴봅니다. “Have a nice day!" "Good Morning!" “좋은 하루, 아침이 되세요!”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기독교 문화 속에서 소망가운데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바울이 세웠지만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사도의 권위를 의심받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율법주의자 혹은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복음이 손상을 입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불화와 분쟁, 파당이 형성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마무리하여 사도 바울의 바람과 축복을 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13절은 목회자들이 축도할 때에 즐겨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절)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성도의 진정한 문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지를 살펴봅니다.

1. 성도가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11절) 샬롬! 평안을 누리십시오. 사람들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마음의 평안일 것입니다. 이러한 평안을 누리는 길은 온전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신앙인이라면 자기 자신이나 다른 교우들에게 사랑가운데 나오는 바람 즉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소원은 온전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기본입니다. 온전한 신앙인은 성숙한 신앙인을 의미합니다. 신앙성장이 신앙인들에 근본적인 바람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신앙인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삶 속에서 경험하는 신앙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는 신앙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사랑은 자기 자신의 자랑이 어떤 자랑인지를 점검해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인지 아니면 인간적 사랑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은 자기 자랑을 해야 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면 안 돼” “무조건 이겨야 돼” 자기 자신이 힘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고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힘을 돈에 둔다면, 재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 힘이 지식에 두면 학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 힘이 지위에 둔다면, 권력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힘을 가져야 돼” “힘을 길러야 돼” “힘을 보여주어야 돼” 자기 자신이 안 되면 자기 자신이 속한 것의 힘을 자랑합니다. 이웃의 힘이 더 큰 것 같으면 깎아 내리거나, 별 것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사역자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삶은 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 자신이 자랑하는 내용을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9절) 상대방이 자기 자신보다 강함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의 약함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자기 자신 이외에 대상을 믿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라고 말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사랑의 대상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신앙인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용서의 은총을 삶 속에서 더욱 더 깊이 음미하며 은혜와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바로 마음의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자신의 죄악 됨을 더욱 더 알아 가면 갈수록 그 은혜의 풍성함은 더욱 더 다가오게 됩니다.

그 은혜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자기 자신의 실망에서 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귀함은 죄인 된 자신을 깨달은 자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결국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나눔은 사랑하는 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성도가 함께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고린도교회의 현실은 파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일치는 유기체, 함께 연결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서로 함께하지 못하기에 마음이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11절) 서로 위로를 받아야합니다. 인간은 서로 위로 자가 되어야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 그리스도인의 가정,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신앙인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부족과 한계, 그리고 연약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서로가 죄로 물든 죄인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인간은 착각하며 세상 속을 살아갑니다. 서로가 각각 다른 모습, 다른 개성, 다른 은사, 다른 사역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함께 할 수 있는 비밀은 서로가 다름을 알고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이 할 때에 서로의 다름이 도움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바라보면 서로의 다름으로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곳! 하나님의 사랑!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함께함을 표현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11절) 거룩하게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된 입맞춤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가치로 구별된 차별의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용서와 관용과 겸손으로 이루어지는 입맞춤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11절)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문안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심을 알려주는 문안을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도구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성도들이 누려야 할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은혜는 대속의 은혜, 용서의 은총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기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하여 의인이 되게 하여주신 사랑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기를 기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알도록 격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삶 속에서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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