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4년 6월 8일            성령의 임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민수기  11 : 24 - 30
우리 교회의 창립일은 4월 1일입니다.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신교 구교, 올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교회의 생일은 오늘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세례와 성찬이 있는 복음의 공동체들의 생일이 오늘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약 120명의 성도들이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비뽑기로 제자로 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을 기다리던 120명의 성도에게 성령이 임재하여 성령이 충만하여 문을 열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오늘 본문은 구약에 성령의 임재의 현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여 광야 길을 가는 동안 모세가 70인 장로를 세운 후에 장로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회막 안에 68명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회막 밖에는 2명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막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성령이 임함으로 예언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과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충만은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이 컵에 차거나 부어지는 것은 넘치거나 투명한 컵에는 물이 담기는 것이 보이고 나타나게 합니다. 아니면 물을 붓는 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알 수가 있습니다. 물이 담기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두 가지를 다 의미합니다. 먼저 성령이 임하신 교우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모두 손을 들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임재가 없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없고, 오늘 이 예배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은 각각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성령은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주시옵소서” 만일 신앙인이 성령을 간구하면서 마음의 중심은 자기중심, 욕심으로 가득 차있다면 성령을 임재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특징은 현상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현상에 도취될 때에 그만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심할 때에 꾸미게 되어 신앙을 자기 자신을 나타내주는 수단으로 삼아갑니다. 그리고 이것이 심하면 이단의 교주가 됩니다. 성령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순종하지 아니하면서 자기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우선되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결정으로 성령이 임하고 안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주셔야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믿어질 수 없고, 예배를 드리러 올 수도 없습니다. 주님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경험해 지는 것은 성령이 임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성령의 임재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 임함의 결정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베푸시는 것이기에 홀연히 임합니다. 성령의 임재는 피동적이지 수동적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홀연히 임하였더니”라고 성령의 임재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임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임한 영” “임하게” “임하신”(25절) “영이 임하셨으므로”(26절) “그의 영을 그의 백성에게 주사”(29절) 성령은 임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만들거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자기 자신의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했을 때에 마음을 열고 받음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은 성령의 충만을 위해 순종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2. 성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25절)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26절)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29절)

성령은 특정한 장소에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회막 안에 있던 68명의 장로, 회막 밖에 있던 엘닷과 메닷 장로들 모두에게 임하였습니다. 특별한 장소로 성령의 임재를 받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삶 자체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원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삶의 현장에사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특정한 기도원에서만, 삼각산, 청계산, 한얼산, 용문산 기도원 등에서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삶의 현장에 사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에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핳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정과 일터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특정교회에만, 대형교회에만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다고 생각한다면 삶의 현장에 사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유명한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교회 자랑만하면서 성도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성령은 특정한 인물에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도, 70인 장로에게도 그리고 백성에게도 성령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두고 시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만 성령이 임하여 예언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28절) 그러나 겸손한 지도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지적합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29절) 성령은 어떤 장소, 어떤 인물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신앙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역자를 의지하기에 실망하기도 하고 맹종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세월호에서 보여준 구원파라는 이단의 실체가 이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들, 하나님께 돌아온 모든 사람들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러 기도원에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 가는 것은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서 방해를 받지 않고 특별히 기도하러 가는 곳입니다.

3.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이 있고 필요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언제 어디서나 어느 누구에게도 영으로 임하십니다. 성령은 각 사람의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주십니다.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께서 각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임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삶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 당시 무식하고 힘없는 주변인물에 불과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성지에 와 있던 각 나라의 유대인들에게 각 나라 언어로 복음을 전하는 신비한 체험들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도구가 되어 사용됨의 기쁨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미 성령의 임재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좇아 살아가면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더 충만하게 경험하면서 삶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것이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삶인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