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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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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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6월 1일            진정한 소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7 : 6 - 19
오늘 우리들은 14명의 졸업생들의 학업의 성취와 상급 학교 진학, 그리고 사회로 진출함을 축하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시는 가운데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원과 하나님의 자녀들의 소원은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자녀나 후손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대한 소원이 달라야 합니다.

오래 전 고국을 방문했을 때에 어느 도시에 이런 현수막이 붙어있던 것이 신기했습니다. “우리 시의 아무 아무개 사법시험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대형 교회에도 같은 것이 붙어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아무 아무개 사법시험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무엇인가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상처받은 자, 실패한 자 그리고 억눌린 자 즉 세상에 별 볼일 없어 힘들어 하는 사람들, 외면당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격려를 통해 일어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세상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오늘 사회가 부패되어가고 타락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잘 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혼의 잘됨으로 말미암아 부모도 영광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고 계십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10절) 주위에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이 부모가 영광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 주며 최고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당신의 부모를 만나보고 싶군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소원을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소원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소원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이름을 내기 위해 살아갑니다. 자기중심의 삶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이 죄의 원인임을 알려주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삶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데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6절)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은 제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것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보다, 공동체의 이름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이름보다, 공동체의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나 우리 하나님이 대단하세요!” “얼마나 우리 하나님이 오묘하세요!”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안 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 즉 가정, 교회 등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에는 자기 착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자기도취에 빠짐으로 결국에는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가 우상이 되어 패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닌 영광을 돌리려는 주체와 교제를 나누며 결국에는 하나님은 수단과 방법으로 삼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엄청난 죄를 지어가게 됩니다.

열심히 사역하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탐하는 순간에 영은 죽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자신의 상황에 도취되어 감으로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갑니다. 선다 싱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은 큰 바다와 같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띄어진 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배란 물속에 있어야 쓸모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고 물이 배안으로 들어오면 잠기기 마련이다” 물에 띄어진 배는 항해를 하며 목적지를 가지만 물이 배안에 들어오면 침수되어 좌초되게 됩니다. 세월호가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배가 침수되지 아니하고 계속 갔더라면 단원고 학생들은 제주도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침수되어 좌초되자 300명이 넘는 희생, 그리고 선생님과 가족, 잠수부가 죽거나 자살을 시도하고 국가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를 순항하며 천국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 속을 살아가는 인생은 보람과 의미를 가지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삶은 세상 속에 침수되어 고통과 허탈감에 살아가게 됩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들, 영적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해야함을 소원하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사회에 진출하는 자녀들, 영적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 함을 소원하며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을 소원해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8절) 자녀들이나 후손들 그리고 교회의 영적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세상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자신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한 그 말씀입니다. 세상 공부는 안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무관심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세상 공부를 위해 투자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는 아까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에 시간과 물질 등 자신의 삶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오신 것임을 확실하게 알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생의 기쁨을 알고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예수님은 너의 친구라고 해주신 말씀은 주님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다니라”고 말한 테레사 수녀의 어머니의 말씀이 테레사 수녀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비밀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삶에 지표가 되도록 하라”는 링컨의 어머니의 유언이 노예해방을 주도할 수 있는 담력을 가지게 합니다.

3.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도하며 소원해야 합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2절)자녀의 믿음의 보전과 믿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보전을 위해 기도하며 소원해야 합니다. 구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받았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 데 그것은 진리와 믿음의 대상입니다.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신 이유가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변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이 변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믿음의 성장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은 삶의 모습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겸손해 진 모습은 이런 대화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모릅니다. 빈틈없고, 완벽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함을 깨달으며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는 해외에 나가서 가난한 나라에 가서 복음전하는 것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삶 자체가 선교인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1절)

진리와 사랑으로 연합되기를 기도하며 소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한 몸 되기를, 예수님과 한 몸 되기를 그리고 교우들과 한 몸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교회가 유기체라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 됨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화목 되는 곳에 연합이 됩니다. 사랑하는 곳에 하나가 됩니다. 겸손한 곳에 하나가 됩니다. 희생하는 곳에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불화하는 곳에 분리가 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며 소원해야 합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9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별된 삶이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14명의 졸업생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적 부모인 교우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이 세상의 소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으로 하나님과 보내신 자 예수님을 더욱 더 깊이 알아가면서 믿음을 보전하고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잘 누리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 자신도 누리고 자녀들에게 전하는 소원을 가지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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