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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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5월 25일            의를 위한 고난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베드로전서  3 : 13 - 22
신앙인들도 고난을 받습니다. 믿음의 연약함으로 자기 자신의 죄와 혹은 과실로 인한 고난, 자기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전체적으로 오는 고난, 그런가하면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삶의 필수조건은 고난이 됩니다. 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사역의 현장에서 사역의 대상이나 아니면 동역 자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시간을 가집니다.

사역을 하다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모함과 모욕, 신체적인 위해를 받기도 합니다. 억울함과 좌절감을 가지기도 하면서 “내가 이 일을 꼭해야 하나” 사역을 중지하고 싶고, 사역 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지 않은 사역자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세상과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중심의 가치와 하나님 중심의 가치는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밟아야 산다고, 손해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아라, 돈을 벌어 재력을 가져라, 명예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라, 서로가 격려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고, 희생하고,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비밀을 알려 주며, 하나님이 주신 삶을 순종을 통하여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사람들이 맞춰가며 동역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현충일입니다. 바비큐하고 여행하는 날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연약한 나라를 돕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분들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우리 조국도 미국의 이러한 희생을 통하여 오늘 날 있게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3만 6천 546명이 미군이 6.25전쟁 시에 희생되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상이군인으로 한평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희생과 신앙인의 희생은 무엇이 다를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의를 위한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14절)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왜 의를 위한 고난이 복이며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가를 본문을 통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기 마음의 점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말씀의 묵상과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 결과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한 고난이 축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의 뜻을 가지고 따르는 것이 생명에 이르느냐를 좌우합니다. 의를 위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13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17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16절) 의와 선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선한 양심은 마음에 하나님을 뜻을 담고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을 의를 위한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크게 보면 십자가로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영원한 생명을 통해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나누게 합니다. 은혜의 누림과 나눔을 의미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행하면서 생기는 고난이기에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데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에서 어느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것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그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고난도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 점검이 없기에 자신이 만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갑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뜻인 줄을 모르면서 말입니다. 결국에는 사역 속에 고난이 오면 짐이 되어서 포기하게 됩니다.

2.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15절)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길은 주인을 누구로 삼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중심에 누가 있느냐가 그 뜻이 누구의 뜻인지를 알려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면 먼저 삶 속에 구별하는 영적 민감성이 생기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로 구별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로 구별된 삶입니다. 인간의 사랑으로 구별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냐가 중요합니다. 준비와 훈련하면 허드슨 강의 기적이 생각납니다. 5년 전, 2009년 1월 15일, 허드슨 강에 155명의 인원을 태우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해서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이륙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상 착륙을 하게 된 사건입니다.

이륙하자마자 새 떼가 엔진에 들어가 타면서 엔진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날, 물에서 얼마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원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언론은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기장과 사고조사 위원들은 준비와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비행기 기장의 정확한 판단과 비행기술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리 오랜 세월동안에 준비와 훈련의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관제탑에서는 활주로를 확보하고 회항하라고 하였지만 회항할 수 없는 상황임을 판단합니다.

회항하다가 맨하튼 상공이나, 인구 밀집지역에 추락하게 되면 승객만이 아니라 지상에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어 9.11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착륙 시 들어 꼬리부분을 먼저 닿게 하여 평행을 유지해야만 침몰의 시간을 지연 시켜 구조할 시간을 벌 수 있음을 알기에 기장은 바로 그곳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관제탑도 비상시 준비와 훈련을 했기에 연락을 받자마자 모든 구조할 수 있는 기관에 한 번에 신속한 경고를 발행하여 연락합니다. 준비되고 훈련해왔던 현지 구조 책임자가 진두지휘합니다. 먼저 허드슨 강에 운행하던 페리들에게 즉각 연락이 됩니다. 제일 가까이 있던 페리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다른 페리에 소방대원들이 승선하여 달려갑니다.

탑승객이 많음으로 많은 구조대원이 가야하기에 항만청 소방선으로 되지 않기에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헬리콥터에 잠수 사를 싣고 날아가 비행기 날개에 있다 빠진 승객 발견 즉시 헬리콥터에서 바로 강물로 낙하하여 구출합니다. 승객들도 기장의 명령인 “충돌 대비 자세를 취하라”는 말에 모두가 순종합니다. 먼저 나가는 사람들이 없이 어린아이들은 서로 인계해 주며 날개 위에 세웁니다. 노약자들도 서로 협조하여 먼저 내어 보냅니다. 긴급한 상황은 생각할 시간이 없기에 훈련되어져 상황에 본능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준비와 훈련은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준비와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15절) 복음을 전할 소망을 둔 자기 자신을 핍박하는 자의 질문에 대답을 준비를 하라고 말합니다. 의를 위한 삶에 핍박하는 상대방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온유한 태도로 답변을 할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확신과 소망을 통한 사랑을 가질 때에 온유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고 질문에 준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살피면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한 고난이 복음을 전할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핍박하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때에 그 사랑이 핍박 자에게 복음을 알게 하고 세상이 그 복음을 알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고난이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기에 하나님께 사용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의를 위한 고난이 축복이 되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인내하며, 희생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예수를 믿고 싶군요”

3.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18-22절에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경험함을 말합니다. 대속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인도하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의를 위한 고난을 받는 신앙인의 축복입니다. 의를 위한 고난을 인내하며 사역하는 곳에 영의 부활로 성령의 역사와 임재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경험 즉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이유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백성이 된 복을 알기에 이를 누리면서 나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것을 경험하고 이러한 것을 전하기 좋은 기회가 의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인지를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핍박하는 자를 온유한 마음을 대하면서 복음을 전할 준비와 훈련을 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본인이 먼저 누려야 합니다. 의를 위한 고난은 이미 축복을 누리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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