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4년 5월 11일            은혜의 누림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23 : 1 - 6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는 분들,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생존해 계시던, 생존해 계시지 않던 누구나 다 이 날이 되면 어머니의 은혜가 생각나면서 그 은혜를 갚지 못함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전화를 걸던가, 카네이션이나 선물 혹은 식사를 대접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생전에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봉사하고 구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님이 아니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호흡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 아니 세계적으로 많은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텔레비전에서 수도 없이 방영한 영화 “It's a wonderful life”입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The Greatest Gift)라는 필립 스턴(Philip Van Doren Stern)의 소설을 1946년에 영화로 만들 것입니다.

조지 베일리(제임스 스트워트) 라는 사람이 가난한 무주택 주민들의 집을 지어 주며 마을에 헌신하던 중 어느 부자 금융가의 농간으로 부도가 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비참한 상황과 조건을 비관하여 성탄절 이브에 자살하러 다리 위로 갑니다. 그 때에 물에 빠진 천사를 구출하려다가 천사로부터 조지 베일리가 태어나지 않은 세상이 어떠한 지를 보여줌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의 귀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가족의 귀중함도 깨닫게 됩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을 주신 분은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해 주신 생명과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로 유명한 시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많이 묵상하는 시편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들 때, 그리고 임종의 시간과 사랑하는 이를 천국에 환송하는 장례의 시간에 묵상하기도 합니다. 고 김영제 장로님과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 때에 이 시편을 함께 외웠습니다. 고 윤종선 장로님의 천국 환송 예배 시 영어로 성경봉독을 할 때에 조객 중 어느 미국인이 끝까지 암송하며 함께 해주어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스폴전 목사님께서 행복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가졌는가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얼마나 누리는가에 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은혜를 누린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은혜를 누리고 나누는 모습을 오늘 시편을 통해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은혜를 누리면서 나누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나누는 삶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본문을 통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1. 상황과 조건이 아닌 관계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삶의 현장, 사역의 현장에서 잊어버리는 것을 질문해보겠습니다. 큰 소리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웨스트체스터연합교회는 누구의 교회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교회” 여러분은 누구의 자녀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은 누구를 믿기에 교회에 나오고 계십니까? “하나님” 여러분의 부모님의 존함을 넣어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아버지 누구 어머니 누구의 자녀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생존에도 우리들을 이야기할 때에 누구, 누구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후손들이 우리들을 이야기할 때도 누구, 누구의 자녀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족보가 이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근본적인 관계는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는 존귀한 관계입니다. 생명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의 가치는 존재의 가치이며, 생명의 가치입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도 이 존귀한 가치를 훼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빈부귀천의 환경과 조건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유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과 빚을 많이 남겨준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누리며 나누는 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여호와는 내게 부족함이 없기에 나의 목자가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관계의 고백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의해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부족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기에 자기 자신의 삶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이 결코 행복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상황과 조건은 지속적일 수 없고, 꾸준할 수 없으며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교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마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자녀들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혈연관계로 DNA가 같은 관계입니다.

어머니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관계입니다.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여 주신 은혜입니다. 어머니께서 품으시고, 해산의 고통 그리고 키워주셨기에 오늘날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형제인 가족관계는 영원한 관계, 나중에 후손들도 인정하는 관계입니다.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에 환경과 조건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에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알랑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해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구체적인 사랑의 관계여야 합니다. 오늘 시편에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 “나의” “내게” “나를” “내” “내가” 다윗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삶의 중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중심이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절) 누구의 인도함을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버스 운전기사가 승객들을 보호하며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인도는 이끌어 주심을 의미합니다.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필요를 공급하시며 생수의 터전으로 인도해주십니다. 이것을 다윗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켜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행복을 가장 원하시는 분이 부모님입니다. 자녀를 인도하시는 것도 부모님입니다. 좋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가서 알아보고 자녀를 인도하려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음을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신앙인의 가정에서 감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믿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 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어머니의 기도를 잊지 못하는 간증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심을 듣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목회에 두려움이 오더랍니다. 어머님의 은혜와 사랑을 음미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걱정이었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기도가 없으니 나는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가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함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절) 자기 이름을 위하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영광은 자녀가 잘되는 것, 즉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뜻인 의도 자녀가 잘되는 것, 즉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자녀의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모든 일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일에 보람과 의미를 가지고 감사와 기쁨이 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로 가야 그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바로 영혼을 소생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영광을 돌리며 뜻을 이루려는 곳에 불행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4,5절) 인도하심은 함께하심을 의미합니다. 함께 하지 아니하면 인도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행 속에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면 슬픔이 덜어 진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는 함께하심을 의미하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물론 인도자가 앞서 가야합니다. 따르는 자는 뒤에서 따라 가야합니다. 인도자를 따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인도자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함께하심은 보호하심을 의미합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함께하면 그 사랑하는 자를 당연히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기쁨입니다. 보호의 확신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고난 받을 때에 반드시 대적자 앞에서 존귀와 영광과 승리의 잔치를 베풀어 주심을 경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승리의 확신은 사랑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평생토록 따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반드시 따름을 알게 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현장이며 나누는 현장임을 알 때에 이러한 고백이 나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6절) 하나님의 은혜와 어머니의 은혜를 누리는 비밀입니다.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