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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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4월 27일            영광스러운 줄거움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베드로전서  1 : 3 - 9
사람들이 이 땅을 살아가다가 보면 갑작스러운 고난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고난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고난의 시간이 그리스도인에게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에 의해 더 크게 어려운 고난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고난이 믿음의 시험이 되는 시간되는 경우들이 되기 쉽습니다. 고난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 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가?” 관계에 대한 의심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레인스 포드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파괴시키거나 감소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튼튼히하고 증대시키기 위해서 시험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탄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험이 있습니다. 사탄의 영인 악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역사를 통한 시험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시험인지는 그 결과를 보면 알게 됩니다. 사탄의 시험 즉 악령의 역사는 믿는 자를 실족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절망과 미움 그리고 불신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 즉 성령의 역사는 믿는 자의 믿음을 성숙시켜 나가고 성화되어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연단시킴으로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연단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더욱 더 깊고 넓게 알고 누리게 하기 위하여 연단시키십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7절)

오늘 본문은 서기 64년부터 시작된 로마황제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로마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무렵에 로마에서 사역 중인 베드로가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제 고난을 당하거나, 곧 당하게 될 교인들에게 그 고난이 믿음의 시험이 되겠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6절) 그 기쁨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즐거움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과 수치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즐거움은 영원한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게 되는 즐거움입니다. 자기 자신도 그 영광과 존귀에 함께하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수치스러운 즐거움은 잠간의 기쁨을 위한 방종을 말합니다.

그 즐거움으로 결국에는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슬픈 자가 됩니다. 잠시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즐거움입니다. 자기 자신 만의 즐거움을 위하여 이웃과 공동체를 슬프게 만드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시험인 고난을 크게 기뻐해야 하는 이유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산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죽은 소망, 헛된 소망,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이 아닙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절) 생명력이 충만한 소망을 가짐을 말합니다. 완벽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소망을 가짐을 말합니다. 이 소망을 확신할 때에 오늘의 고난의 인내와 그 고난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산 소망은 어떻게 주셨는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3절) 거듭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가 가진 소망입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소망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품는 자가 가지는 소망입니다. 자기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자의 소망이기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만이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새로운 질서로 살아갑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질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옛 사람은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소망입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기에 영원히 누리고, 완벽하게 이루어질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어떻게 있게 되는 가?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3절)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동정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소망은 오직 하나님만이 동정을 가지고 해 주실 수 있는 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영생을 사는 바로 부활과 영생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주는 소망, 세상이 가져다주는 소망은 그저 소망으로 끝나게 됩니다. 부활과 영생의 소망은 인간과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증인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산 소망의 근거는 부활의 소망입니다.

2. 영원한 유업을 받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4절) 인간이 유업으로 받는 것은 더러워지거나 쇠하거나 아니면 부패하여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받은 유업은 썩지 않은 유업, 더럽지 않는 유업, 쇠하지 않은 유업입니다. 영원한 것을 하늘에 준비해 주셨습니다.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그리고 영원한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세상의 가치는 썩거나 더럽혀지고 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치는 거룩하고 영원하며 성숙하게 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믿음의 고난이 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연단으로 오는 시험이 잠간이며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시험은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물론 고난에는 근심이 찾아옵니다. 고난을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그러나 그 열매는 영원한 열매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3.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영적 성장의 원리를 공부하신 분들은 이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죄의 대가로 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으로 죽음에서 자유로워 영생함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현재에 이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사탄이 존재합니다. 현재의 구원은 죄의 권세로 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으로 자존심으로부터 자유로워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미래의 구원은 죄의 존재로 부터의 자유 함을 영원히 누리는 것입니다. 사탄이 존재하지 않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축복을 누립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5절) 이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얻는 것인 동시에 믿는 자의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믿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8,9절)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나 믿는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맡기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더욱 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며 산소망의 확신 가운데 믿음이 더욱 더 성숙되어 가야 합니다. 고난은 이를 위해 아주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실체를 깨닫고,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기에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잠간의 근심을 통해 엄청난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거하게 됩니다. 그 근거는 부활신앙입니다. 귀하고 칭찬과 영광을 얻는 기회입니다. 잠간을 위해서 영원한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수치스러운 즐거움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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